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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권의 영혼의 창-사랑의 고백

2013.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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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고백

 

신앙의 젊은 시절 저는 목청껏 소리 높여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외치고 고백했습니다. 땅 끝까지 갈 것처

럼, 내 생명이라도 바칠 수 있을 것처럼 자신만만하던 나의 사랑의 고백을 받으신 예수님은 오랜 세월동

안 저를 어디까지 이끌고 가셨는지 아십니까. 바로 내 속에는 예수님을 사랑할 만한 사랑의 원천이 없다

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는 데까지 이끌고 가셨습니다. 제가 주님께 고백한 사랑한다는 말은 사실 아무런

뿌리가 없는 메마른 고백내지는 내 육체의 의를 의지해 드린 고백이었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창 예수님을 따르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

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면서 예수님에 대한 불같은 사랑을 드러냈지만 정작 예수님은 바요나 시몬아라고

이름 부르며 이를 알게 한 이는 네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라고 베드로의 인간적 의를 중의적으로 드러

내셨습니다.(마 16:17)

인간적인 의와 능력으로 사랑을 드리려한 베드로는 결국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는 데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닭이 울었죠. 그때 살이 찢겨나가는 고통으로 누워있던 예수님은 퉁퉁 부은 눈으로 베드

로를 쳐다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예언처럼 세 번 부인하고만 자신의 죄를 정죄하며 떨고 있는 베드로를

예수님은 쳐다보았습니다. 예수님의 그 눈빛은 부인한 베드로를 정죄하거나 심판하는 눈빛이 아니라 변

함없는 사랑의 눈빛이었습니다. 네가 부인해도 너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한다는 눈빛이었습니다. 그건

요한복음 14장 1절에서 세 번 부인하게 될 베드로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당

부하시던 예수님의 눈빛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원했던 것은 사랑한다는 고백이 아니라 예수님이 베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베드로가 먼저 알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사랑의 힘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그 사랑은 예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먼저 알고 충만해질 때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드러나

는 그런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스스로의 능력으로 무작정 달려드는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예수님

의 사랑을 먼저 깨닫고 그 사랑의 능력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참

으로 아름다운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갈망은 요한복음 21장에서 베드로에게 세 번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바요나 시몬아라고 부름으로써 인간적 사랑으로 가득 찼던 베드로의 옛 지점을 먼저 상

기시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달라져 있었습니다. 당시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 후 개인적 만남으로 인

해 온전히 돌이키고 예수님의 먼저 된 사랑이 영혼에 차오르고 있을 때였습니다.(눅 24:34)

예수님은 첫 번째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아가파오(avgapa,w)하느냐고 물으시고 베드로는 주님을 필레오

(file,w)한다고 대답합니다. 많은 학자들은 아가파오와 필레오를 ‘사랑한다’는 뜻을 가진 동일한 단어로

해석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짧은 문장 안에서 성령님께서 두 단어를 달리 쓰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

다. 아가파오는 일방적인 무조건적인 사랑을 뜻하고, 필레오는 서로가 서로의 사랑을 알고 친밀해진 더

욱 관계 중심적인 사랑을 뜻합니다.

예전처럼 네 중심적인 사랑을 하느냐고 물으시는 예수님께 베드로는 “아닙니다. 이제는 필레오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먼저 갈망합니다. 그 주신 사랑의 능력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

다.

예수님은 두 번째에도 아가파오로 물으셨지만, 베드로는 필레오로 대답하여 자신의 변화된 영혼을 보여

드립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부어지는 먼저 된 사랑을 깨달은 베드로에게 이제 예수님께서는 단어를 바꾸어 베드로

에게 그의 마음을 칭찬하시고 확증해주십니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필레오하느냐.” 베드로는 역시 필

레오로 대답하고, 예수님은 그 베드로에게 교회를 맡기십니다. 사랑한다고 달려드는 베드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먼저 알고 그 공급하심을 갈망하는 베드로에게 교회를 맡기십니다.

우리 육체 안에는 사랑의 힘이 없습니다. 사랑의 능력은 예수님의 사랑을 먼저 알고 그 사랑이 우리 가

운데 부어질 때 우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젊은 혈기를 휘두르기 전에

예수님의 사랑을 먼저 깨닫고 그 사랑으로 성령 안에서 충만해지고 성숙해지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

다. 성령님께서 그렇게 이끄실 것이기에 잠잠히 예수님 안에서 평안 가운데 안식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차명권 전도사(온누리교회, HEART mini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