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건너 오두막-엄마의 엄살
2013.12.05상세 본문
엄마의 엄살/ 홍순복
엄마의 방 벽에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크게 쓰인 종이가 붙어있다. 글
체로 보아 언니 솜씨 같았다. 어느 날 엄마는 하나님의 아들이 누군지 잊었다고 해
서 함께 사는 언니네 식구들이 놀란 나머지 엄마가 매일 보도록 써놓은 거라 했다.
나는 어젯밤 엄마가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다고 해서 엄마를 보러 왔다. 언니말로는
엄마가 대성통곡을 했다는 것이다. 잠을 잘못 잤는지 목이 전혀 돌아가지 않아 아프
다며 빨리 고쳐달라고 했단다. 언니는 엄마의 목소리가 그렇게 큰 줄 전에는 몰랐다
고 했다. 식구들이 모두 외출한 집에 언니 혼자 혼이 났다고 말했다. 아프다는 곳에
부황을 떴더니 시원한지 더 뜨라고 했단다.
방으로 들어서니 엄마는 침대위에서 두 다리를 뻗고 무표정한 얼굴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니 두 손을 내밀며 손은 잡았다. 그리고 또 당신 얼굴위에
갖다 대며 부볐다. 엄마의 목 부분에 부황 뜬 자리가 보였다. 검은 보랏빛이었다.
" 엄마, 이제 내가 간단한 운동을 가르쳐줄게 따라 해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엄마는 시큰둥한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필요 없다는 것이다.
얼마 전 TV '생로병사'란 프로에서 80이 넘은 할머니가 몇 가지 근육운동을 해서 굽
었던 허리가 쭉 펴진 것을 보았다. 나는 90도로 허리를 굽혔다가 다시 펴는 동작을
엄마에게 시범해 보였다. 우선 가장 쉬운 것부터 시작했다. 침대에 걸터앉아 양 다
리를 흔드는 것이다. 꼭 수영장에서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는 것 같은 모양이다. 엄
마는 조금 하다가 힘들다며 그만 두었다. 그다음엔 북치는 모양을 선보였다. 양손을
올려 북치듯 위로 하나 둘 셋 넷 하고 아래로 가서 또 반복하고 왼쪽 오른쪽 번갈아
가며 했다. 북치는 것이 연상이 되지 않는지 하는 모양이 엉망이었다.
" 엄마, 왜 그렇게 운동신경이 둔해 ……잘 좀 보고 해봐요."
엄마는 성의 없이 양손만 앞에서 조금 흔들다 말았다. 나는 또 연 날리는 모양의 운
동법을 가르쳤다. 연을 하늘로 날려 보내며 실타래를 풀듯 양손을 페달 밟는 것처럼
빙빙 돌려 보였다. 엄마는 제대로 따라 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런 엄마는 별안간
투정하듯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 나 못해, 싫어 힘들어."
나는 엄마가 덮고 있는 이불을 걷어내고 양 발바닥을 주먹으로 탁탁 쳤다.
" 아야야, 아파 그러지마, 아파."
엄마가 아프다고 소리쳤지만 나는 더 세게 쳤다.
" 엄마, 발을 이렇게 이불속에 묻어 두고 있으니 아프고 저려서 걸을 수 없는 거야.
조금만 참아, 이렇게 발바닥을 쳐서 마사지를 해야 피가 도는 거야. "
볼 때마다 운동을 하라고 해도 귀찮다며 손을 내젖는 엄마에게 나는 언제나 목청을
높이게 된다. 그럴 때면 말하는 나 까지도 기운이 쑥 빠진다.
" 엄마, 이 바지 입어봐, 바꿔왔는데 또 싫다고 하면 도로 가져갈래."
까다로운 엄마는 바지를 사오라고 하고는 몇 번이나 마음에 안 든다고 퇴자를 놓았
었다. 엄마는 내가 내민 바지를 힐끗 보더니 이번에는 마음에 드는지 입을게, 하며
한 쪽으로 밀쳐놓았다.
엄마는 열려진 방문을 닫으라고 하더니 기도 좀 해주고 가라 했다. 나는 엄마 손을
잡았다. 손이 몹시 차가웠다. 나는 엄마의 손이 따뜻해지도록 부비고 또 부비며 엄
마에게 물었다.
" 예수님이 누구야?"
" 하나님의 아들."
" 예수님이 누굴 위해 돌아가셨어?"
" 날 위해."
"엄마, 다른 건 몰라도 예수님을 잊으면 안 돼요."
" 그래 알았어."
그러더니 엄마는 입속말로 예수님, 예수님, 하고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나는 엄마
의 손을 잡은 채로 기도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엄마를 지켜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엄마가 예수님 손 꼭 잡고 살게 하
시고, 언니들에게 아프다고 짜증내며 울지 않게 해주세요. 주님이 좋아하지 않으시
죠? 옛날 새벽기도 하러 교회 가던 즐거움이 지금도 엄마에게 있게 하세요. 질병으
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 엄마는 얼마나 건강합니까? 주님 감사합니다.
저희 엄마 건강하게 사시다가 주님이 오라 부르시면 기쁨으로 가게 하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엄마도 큰소리로 아멘, 했다.
거실로 나오니 언니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귀 밝은 엄마를 의식해서인지 아
주 작은 소리로 소곤대며 엄마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작은 언니가 매일 엄마 이부자
리를 밖에 나가 털고 침대 커버도 자주 빤다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허였게 떨
어진 비듬 때문에 두고 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엄마 방에는 노인 냄새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큰 언니는 삼시 세끼 밥상을 차리는 일 때문에 언제나 꼼짝을 못한다는 고충을 털어
놓기도 했다. 매일 아프다고 엄살 피는 엄마를 언니들은 아이 달래듯 하며 돌보고
있다. 지금은 막내딸인 네가 와서 얼굴을 펴고 웃지만 너만 가면 또 아프다고 엄살
을 부릴 거다, 라고 큰언니는 말했다.
나는 두 언니들의 애로사항을 들으며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내일 모레 구십이
되는 엄마가 예수님을 잊지 않고 항상 기쁨으로 사시길 빌어본다. 더욱 자주 엄마
손을 잡으러 오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2011-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