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건너 오두막-월남치마
2014.01.19상세 본문
월남 치마/ 홍순복
엊그제 언니들과 산소에 갔었다. 아버지 보다 20년을 더 산 엄마가 한 달 전에 아버
지 옆에 누웠다. 아직 비석은 없이 잔디만 덮였다. 언니는 울먹이며 기도하는데 나는
갑자기 아버지의 옛날 일이 생각나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버지는 술을 많이 마셨다. 술을 정말 좋아한 건지 중독이 된 것인지 모르지만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취한 날이 많았다. 그런 아버지가 싫었던지 오빠와 두 남동생은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몇 개월 술을 입에 대지 않다가도 마셨다 하면 안주 없는 깡술을 보름을
넘게 마셔곤했다. 돈이 없으면 구멍가게의 외상장부에 이름을 달고 마셨다. 제때 술
값을 갚지 못할 때면 집에서 가까운 가게를 피해 먼 길을 돌아 집으로 오기도 했다.
엄마는 그런 아버지에게 제대로 한번 대들지도 못하고 그저 참고만 살았다. 엄마는
새벽에 교회에 가는 것으로 답답한 마음을 풀어내는 듯 했다. 아버지의 주사는 특별
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곤히 잠든 우리들을 깨워놓고 언제나 똑 같은 질문을 했
다.
내가 누구야? 아버지는 공장에서 용접할 때 사용하는 노란 철사로 방바닥을 두드리
며 묻는다. 우리 가운데 아무나 아버지요, 하고 대답하면 아버지는 다시 내 이름은
무어냐고? 고 묻는다. 그러면 우리는 또 홍정인 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대는데 그
제서야 아버지는 됐어, 그만 자라, 하며 우리를 놓아준다.
어느 날 낮술에 취한 아버지가 밖으로 나가려고 비틀대며 일어섰다. 그러자 엄마는
옷장 속의 아버지 바지를 꺼내어 광속에 숨겼다. 아버지는 입을 바지가 없자 방바닥
에 누워버렸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엄마는 아버지가 없어졌다며 좌불안석을 했다.
“ 바지를 감추어두었는데 네 아버지가 무얼 입고 밖으로 나갔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무슨 단서라도 잡을 듯이 옷장 안을 뒤졌다. 그리고는 숨겨놓은 바지를 확인
하려 광으로 갔다. 엄마는 아버지 바지를 들고 나왔다.
그때 초인종소리가 났다. 옆집 아줌마였다.
“ 아유 어떡하나 이 집 아저씨가 술이 취했는데 모습이 너무 민망해요.”
옆집 아줌마는 혀를 끌끌 차며 돌아 갔다.
엄마는 나에게 얼른 아버지에게 가보라고 했다. 나는 벌건 대낮에 술에 취해 비틀대
는 아버지를 데려올 자신이 없었다. 나를 본 아버지 왜 왔냐고 소리칠 것이 뻔하다.
그러면 동네 사람들이 다 내다 볼 것이고, 그때마다 아버지의 딸인 것이 창피했다.
어쨌든 나는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구멍가게 앞에는 몇몇 동네 여자들이
모여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아버지 때문에 사람들이 모인 것이 분명했다. 그때까
지 까치 발을 하고 구경하던 수다쟁이 종희 엄마가 나를 보더니 호들갑스럽게 말했
다.
“ 얘, 네 아버지야 어쩜 저럴 수 있니? 어서 빨리 집으로 모시고 가거라.”
나는 빙 둘러 서 있는 여자들을 밀치고 고개를 쑥 들여 밀었다. 거기 아버지가 서있
었다. 나는 얼른 아버지의 하체부터 살폈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내 귀와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버지는 놀랍게도 월남치마를 입고 있었다. 엄마가 아끼던 남
색 치마였다. 울퉁불퉁한 아버지의 다리가 옆 선이 터진 치마 사이로 훤히 드러났다.
치마가 좁아서 찢어졌는지 엄마가 입었을 때보다 많이 터져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
나 우스꽝스런지 영화광 이었던 아버지가 분장 없이 광대연기를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다음날 술이 깬 아버지에게 나는 따져 물었다. 아무리 술이 좋아도 치마를 입고
나가 딸 망신을 시키느냐고 했더니, 아버지는 아무 기억이 없다는 말로 입을 막았다
평소에는 멋쟁이였던 아버지가 술이 취해 그런 모양을 남들에게 보였다는 것이 내게
는 특별한 부끄러움으로 남겨졌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옛날의 그 일이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웃음을 선사한 아버지의
코믹한 선물로 간직하련다. 이 글을 쓰다가 나는 컴퓨터 키보드에 코를 박고 웃었다.
침대에 누워 다리운동을 하던 남편이 왜 그래, 하며 놀란 눈을 했다. 나는 아버지 월
남치마 얘기를 했더니 남편도 하하,함께 따라 웃었다.
2012.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