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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촛불 아래서

201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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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아래서/ 홍순복

 

 주일 예배 후 집으로 돌아와 된장찌개를 끊이기 시작했다. 금세 부글대며 끊던 냄비

속 다시마가 팔락거리다 힘없이 주저 앉았다. 정전이었다. 혼자 떠들던 텔레비전도

조용해졌다. 오랜만에 제대로 국과 밥을 해서 먹으려 했는데 하필 요 때 파워가 나갈

게 뭔가.

  거실 문밖으로 구찌녀석이 보였다. 페리오에 길게 누워 아무것도 모른 채 일광욕에

여념 없다. 야, 임마, 너야 무슨 걱정이 있겠냐, 마미는 불이 나가 점심도 굶겠다. 집

안에서 구찌를 보고 떠드니 녀석은 슬며시 일어나 몸을 한번 털어내곤 더기도어로 

슬금 슬금 들어왔다. 그리고 무슨 일이냐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3부 예배 후에

돌아올 그린과 남편에게 전화를 하여 얘기를 하고 간단한 점심을 먹고 오라 하였다.

  늘 친절한 알렌과 고양이 주인인 선생님은 냉장고에 드라이아이스를 넣어야 한다

고 했다. 그리고 망치로 두드려  몇조각을 내어 칸칸이 드라이아이스를 놓으라고 했

다. 절대 손으로 만지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 손이 탄다고 했다. 그깟 아이스를 만

지는데 무슨 화상을 입는지 호들갑스런 그녀들의 말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안았다.

  알버슨 마켓에 가니 이미 드라이아이스는 동이 났고 3파운드 정도만 남았다고 한

다. 동네 사람들이 다 사간 것이다. 그거라도 들고 나왔다. 드라이아이스를 더 사려

고 반스마켙을 가니 그곳은 한가한 곳이라서 그러지 이젠 그런 얼음은 취급하지 않

는 다고 했다. 다시 집에서 먼 제프리와 트라부코부근의 알버슨마켙을 갔다. 마켙 메

니저는 캐시어 앞에 놓인 박스 쪽으로 우릴 데리고 갔다. 그것은 자물쇠로 닫혀있었

다. 그리곤 금고문을 열 듯 비밀번호를 눌러 뚜껑을 열었다. 꼭 옛날의 아이스케키

통 같았다. 그 안엔 네모난 10파운드 드라이아이스가 몇 개 있었다. 그녀는 가든용

두꺼운 장갑을 끼더니 그 통 안에서 아이스를 던져 깼다. 절대 맨손으로 만지지 말고

얼굴도 가까이 대지 말라며 주의사항을 말해주었다. 그 얼음 한 판이 14불이나 되었

다. 촛불을 밝히기 위해 일회용 라이터도 한 봉지나 샀다.

  월요일이 되어도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린은 일하는 내게 자주 전화를 해댔

다. 무료해서 죽겠다는 것이다. 책을 보고 잠도 자고 샤워하고 먹고 그래도 시간이

남는다는 것이다. 정전이 그리 나쁜 것만 아닌 것 같았다.  여름방학인 요즘 그린은

하루 종일 컴퓨터와 살 텐데 정전으로 인해 원시인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딸

이 오히려 좋은 시간을 갖는 거라고 쾌재를 불렀다.

저녁에 퇴근해서 돌아오는데 에디슨회사 차가 6.7대나 골목에 들어서서 공사를 하고

있었다. 아직도 정전 원인을 찾느라 고생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여기 저기 땅을

파 헤쳐 놓았다. 주차장에서 집으로 들어오며 다리에 이르러 보니 개울은 물이 많이

빠져 흙탕물처럼 탁해 보였다. 오리들과 비단잉어 그리고 각종 물고기들이 걱정되었

다. 발전기가 멈추어 버리니 물이 돌지를 않아서 바닥이 말라가고 있었다. 오리 20마

리가 물이 조금 많은 곳으로 몰려있었다. 누군가의 지휘아래 줄을 선 듯 나란히 줄을

지어 물질을 하고 있었다. 그들도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듯 안전을 위해 단

체 행동을 했다.

  집 앞에 오니 이웃 아줌마가 옆집 조지네 벨을 누르고 있었다. 아무리 눌러도 소식

이 없다며 내게 물었다. 

“ 이 집은 어디로 피신을 갔나 봐요,”

 나는 웃음이 나왔다.

 “ 전기가 없는데 벨이 작동하나요?”

“ 아, 그렇죠. 그래서 어제도 눌렀건만 무소식이었구나.”

  그녀가 바로 문을 두드리자 조지와 그의 아내가 기다린 것처럼 웃으며 문을 열었

다. 동네 반장 같은 조지네로 모여야 정보가 빠르기에 그녀와 나는 앞다투어 언제쯤

전기가 들어오는지 물었다. 하나 둘 이웃들이 모였다. 별로 인사도 없이 지나던 이들

도 반갑게 인사들을 나누었다.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유년기를 보낸 서해의 작은 섬은 전기가 들어오기 전 남폿불

을 켰다. 남포에 석유를 넣고 심지를 돋우고 갓을 씌우고 불을 붙이면 환한 등불이

됐다. 지금의 캠프용 램프와 비슷한 것으로 갓 모양이 표주박 같기도 하고 여자의 나

신 같기도 했다. 석유를 따를 때면 톡 쏘는 석유냄새가 좋았다. 날마다 종이처럼 얇

은 유리 갓을 닦는 것이 나의 몫이었다. 밤늦도록 켰던 남폿불의 갓을 조심조심 벗겨

시커멓게 그을은 갓을 비눗물로 닦았다. 작은 주먹 하나는 그 갓 속에 넣고 나머지

한 손으로 갓을 잡고 요리 조리 돌려가며 수세미로 살살 그을음을 닦았다. 그런 후

마른 수건으로 호호 입김을 불며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닦아 말렸다. 잘못하면 바닥

에 떨어트릴까 걱정되어 언제나 두툼한 옷을 밑에 깔아 놓고 남포 청소를 했다. 그

남폿불 아래에서 엄마는 바느질, 우리 형제들은 책을 읽고 공부하며 즐겁게 살았다.

정전으로 인해 우리 세 식구는 모처럼 아늑한 사간을 가졌다. 캐비닛 속에 숨겨졌던

각양 각색의 캔들을 찾아내어 불을 밝히고 그 촛불아래서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샤워

를 했다. 어린 시절 남폿불 아래서 놀던 그 빛깔처럼 따뜻한 이틀 밤을 보냈

다.

 

2012.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