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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권의 영혼의창-어떤 초상화

201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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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초상화

 

사람들이 자신을 얼마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이 있었습니다. 어

느 화가가 귀로만 듣고 초상화를 그리는 실험이었습니다. 화가는 한 번은 대상자가

스스로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초상화를 그리고, 또 한 번은 다른 사람이 그 대

상자에 대해 하는 묘사를 듣고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당사자

의 시선을 통해 묘사된 그림보다 다른 사람이 하는 묘사를 통해 그려낸 초상화가 더

욱 밝고,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자기의 묘사를 통해 그려

진 어두운 표정의 초상화를 본 당사자는 어두운 자기인식의 결과 앞에, 그리고 행복

을 잊어버리고 살아온 자신의 삶 앞이 뒤늦게 후회되어 흐느껴 울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객관적이지 못한 영역의 하나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닐까 생

각합니다. 우리들은 자신이 얼마나 아름답고 빛나는 존재인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과거에 내렸던 잘못된 결정들, 자신이 상처를 줬던 많은 사람들, 또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었던 깊은 상처들, 생각처럼 풀리지 않고 좌절된 꿈과 현실의 기억들이

자기인식을 어둡게 물들입니다. 우리들은 자신의 진짜 가치를 보지 못하고, 미소 지

을 권리도, 행복할 권리도 당연히 없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의 진짜 가치는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 아

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에 달려 있습니다. 팔다리가 없어 1미

터도 보행하지 못할지라도, 전신 화상을 입어 사람들이 얼굴을 찡그리더라도, 내가

하는 모든 선택들이 잘못되고, 얼룩진 내 삶의 목숨이 단 하루밖에 남아 있지 않더라

도 하나님이 성도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를 안다면 우리의 삶은 환경변화에 상

관없이 사슴처럼 회복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예수님처럼 보고 계십니다. 언약궤는 싯딤나무가 순금으로 덧

입혀져 있습니다. 이처럼 성도들도 예수님의 의로움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하나님

은 십자가로 인해 우리의 죄와 허물을 기억조차 하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빈

말이라 여겨버리고 매일 죄의식 속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은

우리를 온전히 뒤덮고 있는 예수님의 의로움을 투과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안에

서 요동치는 죄의 흔적들에도 불구하고 담대히 주님 품안에 안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이 내 죄를 보고 계시다는 생각은 그릇된 것입니다. 세례

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는 예수님을 향해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신 동일한 하나님께서 오늘 성도들을 향해서도 같은 사랑의 음성으로 부

르고 계십니다.

성도들 안에 죄가 드러날 때 성도들은 그 죄가 보혈로 인해 나와 상관없는 것이 되었

다는 인식과 선포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더 이상 그런 죄 아래 있지 않고, 살아나서

은혜 아래 있게 되었음을 알고 선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

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라(로마서 6:14)”

예전에는 아무리 선한 일을 하더라도 죄인이었고 더러웠고 죽은 사람이었지만, 예수

님을 믿고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의인으로 살아났고 그리스도의 신부로 깨끗

하고 아름답게 변했음을 사단에게 당당히 밝히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5장 19절은 이

전에는 죄인이었다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된 우리의 신분을 밝히고 있습니

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

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춤을 추시고 기뻐 어찌할 줄 모르시는 이유는 우리를 보실

때 예수님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정죄하지 않으시는데도 우리들은 스스로

를 정죄하고, 하나님이 괜찮다고 하시는데도 우리들은 아직 괜찮지 않다며 겨우겨우

애쓰며 살아갑니다. 자신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을 더 더럽게 만

들어버리고, 자신이 깨끗한 신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을 더러움에서 지

켜내는 용기와 능력이 성령으로부터 흘러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의롭

게 부르신 이유가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장로의 집뜰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면서 예수님은 자신을 부인하고 저주하는

베드로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예수님의 시선은 정죄가 아닌 “괜찮다, 베드로야. 그럼

에도 불구하고 너는 내가 목숨을 바쳐 사랑하는 내 아들이다”였습니다. 어떠한 순간

에도 물러서지 않는 예수님의 사랑과 선하심 안에서 당신이 얼마나 아름답고 빛나는

존재인지를 묵상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차명권 전도사(온누리교회, HEART mini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