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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권의 영혼의창-애벌레

201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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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벌레

 

나비의 아름다움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곧 나비가 될 애벌레를 보고 기

뻐하는 사람들은 적습니다. 징그럽고 더럽고 온전해 보이지 않는 애벌레에게 “너는

왜 그 모양이냐”고 다그쳐 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나비에게 이 볼품없는 애벌

레의 시간은 잘못된 상태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나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입니다.

만약 나비에게 조금의 인지력이라도 있다고 가정한다면 더럽고 징그럽다는 사람들

의 말과 태도 때문에 많은 나비의 애벌레들이 스스로 생명을 끊고 말 것입니다.

율법은 명령한 기준들을 다 지켜야 나비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율법은 계명들

을 지켜야 거룩해질 수 있다고, 계명들을 지켜야 복을 받으며 살 수 있다고 가르칩니

다. 그러나 율법은 거룩해지는 도구도 아니고 복을 받는 통로도 아닙니다. 율법은 아

홉 계명을 지키면 왜 열 번째 계명으로 위협하고, 열 번째 계명까지 지키면 바르게

지키지 않았다고 질적 문제를 들고 나옵니다. 율법은 절대로 애벌레의 시간을 사랑

할 수 없게 만듭니다. 애벌레의 더럽고 추한 상태를 나쁘다고 판단합니다. 제대로 율

법을 지켜야 나비의 상태가 될 수 있다고 말하지 절대로 애벌레에게 지금 있는 그대

로의 모습이 바로 아름다운 나비의 모습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여리고성에서 남자들에게 몸을 팔며 살고 있던 라합이라는 여인도 나비의 형상을 품

고 있는 애벌레였습니다. 라합은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숨겨주고 그 마음에 하나님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기생이라는 직업을 그만두지 못했습니다. 나손 장

군이 홍해를 가르고 올 때까지도 그녀는 여전히 기생이었고, 나손 장군의 아들 살몬

과 결혼하여서야 비로소 기생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몸 파는 여인이라고

손가락질 했지만, 하나님은 애벌레 같은 라합에게 오랜 시간 인내하시며 그녀가 나

비임을 알려주었습니다. 아브람에게 20년 이상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말이죠. 비록

몸을 팔지만 하나님은 라합을 사랑했고, 그녀를 택하셨고, 기생이라는 직업도 막을

수 없는 예수님의 고귀한 신부라는 것을 라합에게 속삭였습니다. 라합의 어떤 행위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이 붉은 피를 그녀의 삶에 드리우시고, 하나님의 손으로 직접

건져내시고 빚어갈 것이라는 나비의 약속을 그녀에게 끝없이 끝없이 들려주셨습니

다. 그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결국 라합을 애벌레에서 나비로 만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언제 불행해졌습니까. 행복했던 삶이 불행으로 바뀌는 순간은 외부적인 환경

의 변화 때문이 아닙니다. 어느 날 율법과 기준들이 삶에 스며듭니다. 그리고 그 기

준의 저울 위에 내 삶의 가치와 무게를 재기 시작하면서 삶은 불행의 열차를 타고 맙

니다. 애벌레인 내 모습을 사랑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죄 많고 허물 많은 내 모습에

눈이 팔린 나머지 나비라고 불러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멀리 치워버렸습니다. 빨리

내 힘과 노력으로 애벌레의 상태를 벗어나 주님께 아름다운 나비의 모습을 올려드리

고 싶은 자기구원 프로젝트가 영혼에 차오르면서 우리는 나와 남을 판단하고, 기다

려주지 못하고, 조급해지고, 바빠지고, 화를 내고,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뒤에도 우리들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그것으로는 부족하

다”는 다그침입니다. 칭의의 능력은 바닷가의 모래성처럼 부실해져버렸고, 성도들은

신발끈 동여 메고 길고 험난한 자기구원 마라톤을 달리고 있는 듯합니다. 조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해 놓고선 일단 믿게 되면 수많은 조건들을 마라톤 길에 펼

쳐놓습니다.

오늘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어느 추모예배에서 귀한 고백을 듣고 나서입니다. 모인 사

람들은 사랑 받는 남편과 아내에 대해 여러 기준들을 주고받았는데, 정작 남편을 먼

저 보내고 1주기를 맞은 그분은 “남편이 그저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와 주는 것만으

로도 너무 행복할 것 같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 순간 저는 나도 모르게 내 삶 가

운데 병풍처럼 높아져 있는 수많은 기준들을 걷어낼 수 있었습니다. 주신 은혜를 은

닉하고 있던 율법의 베일을 벗겨낼 수 있었습니다.

내 삶이 애벌레 같이 보일 때가 있을 것입니다. 만지기도 싫을 만큼 끔찍하고, 어떤

때는 텅 빈 껍데기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느껴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 애벌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괜찮습니다. 나비를 만

드시는 분은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애벌레지만 그리스도가 조건 없이 사랑

하는 아름다운 신부요 곧 변모할 나비입니다. 주님의 동산을 맘껏 날아다니는 깨끗

한 나비입니다. 지금의 애벌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주님이 하실 일들을 기대하

며 주님의 계절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차명권 전도사(온누리교회, HEART mini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