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건너 오두막-10년 묵은 배트
2014.01.21상세 본문
10년 묵은 배트/홍순복
차에 앉은 그린이 훌쩍거리고 있다. 왜 우느냐고 묻자 눈을 흰자만 보이며 쳐다본다.
“남들도 나를 뚱뚱하다고 하는데 엄마 아빠까지 그러잖아!”
요즘은 그린의 몸무게가 부쩍 늘어 걱정을 하다못해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 어떻게 해야 얼마 전의 모습이라도
되돌아 갈까 고민이다. 집을 나서기 전 드레스를 산다는 아이에게 몸무게를 줄인 후에 사지, 라고 한 말이 저렇게
토라지게 한 거다. 엄마로서 보통 할 수 있는 말인데……몇 번이나 이런 상황을 만든 것에 후회도 했지만 내 입은
멈추지 못하고 아이를 화나게 했다.
“ 울지마, 엄마가 그런 말도 못하니?”
“몸무게 이야기 하지 않기로 하고 또 했잖아? 내가 얼마나 그런 말에 센스티브한지 알아? 나는 자신감이 없어 남
들도 내가 뚱뚱하다고 했어. 그런데 엄마 아빠까지 그러니까 살고 싶지 않아. 흑흑…”
“ 그럼 야채도 먹고 운동도 하고 그래야지, 컴퓨터만 하지 말고.”
“ 야채 같은 것 먹기 싫어. 왜 그 엄마는 캔서를 가져서 일찍 죽었어. 그래서 아빠가 나를 밥만 먹여서 이렇게 된
거야.”
“ 죽은 엄마를 탓해서 뭐해. 지금이라도 탄수화물 대신 야채로 바꾸면 되잖아.”
저렇게 그린이 토라지고 삐치는 것을 보며 아이의 몸무게가 늘던 말던 참견하지 말자, 다짐을 하건만 아이의 엄
마가 된 이상 내게도 말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아이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얼마 전 누군가 보내온 메일
속에 몸무게로 챔피언이 된 여자의 사진을 보았다. 두 아이를 낳고 잘 살던 사진 속의 여자가 믿을 수 없을 정도
로 뚱뚱이가 되어 있었다. 그녀가 먹는 모습이 떠올라 더럭 겁이 났다. 누구든 마구 먹고 움직이지 않으면 사진
속 그녀처럼 뚱보가 되는 것이다.
그린이 너무 컴퓨터를 끼고 산다는 점이 문제이다. 그러면서 습관적으로 많은 양을 먹는다. 나는 아침 7시에 나
가면 5시에나 퇴근해 온다. 아이에겐 자유시간이 많다. 다른 집 아이들은 컴퓨터 하는 시간이 정해졌다고 하는데
잔소리를 하면은 숙제를 한다고 하니 어디까지가 숙제이고 아닌지를 알 수 가 없다.
아이를 달랠 수 밖에 없다. 가까운 얼바인 스펙트럼으로 갔다. 올드네이비 쿠폰 30불짜리가 있었다. 매장에는
봄이라서 그런지 옷 칼라들이 시원하고 원색에 가까운 화려한 색상들로 가득했다. 그린은 드레스 몇 개를 집어
들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나온 아이는 긴치마를 들어 보였다. 어깨 끈이 없는 드레스로 가슴까지 올리는
것이다. 꽃무늬가 화려한 오랜지 색과 흰색을 배합한 긴 드레스였다. 마음에 드느냐고 했더니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가격을 치르고 나오면서도 작은 치수의 예쁜 옷들에 자꾸 시선이 간다. 그린이가 입으
면 얼마나 예쁠까, 하며 날씬해진 아이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순예배 때에 기도제목으로 그린의 몸무게를 적어냈다. 내 고민을 들은 손미숙집사가 자기 집에 탁구대가 있다
며 그린과 오라고 했다. 주일저녁이였다. 탁구 치러 오라고 손집사가 전화를 했다.동치미 국수를 한다며 저녁을
먹지 말고 오라고 했다. 탁구 배트 좋은 게 있었는데 아들이 학교로 가져간 건지 못생긴 배트만 남고 탁구공도 없
다고 했다. 공은 이웃집에 가서 빌린다고 했다. 옆에서 통화를 들은 그린은 빨리 탁구 치러 가자며 아이답지 않게
서둘렀다.
나는 10년 전에 한국에서 사온 탁구배트가 생각이 났다. 참피언 탁구배트이다. 4개중 두 개만 남았다. 탁구를 칠
수 있는 여건이 못되어 배트만 묵혀 둔 것이다. 언젠가 쓸 날이 있으란 바램으로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제 딸과 같
이 사용하게 되었다. 플라스틱 포장을 뜯었다. 새것 그대로였다.
남편은 치킨과 야채를 넣어 콘 토티아로 타코를 만들어 저녁을 들라 하고 우린 손에 탁구 배트를 하나씩 들고 손
집사님 집으로 갔다. 집 앞에 도착하자 차고 문이 열려있고 탁구대가 놓여있었다. 남자 집사님이 나와 우리를 반
겼다. 우선 저녁부터 먹자고 해서 집안으로 들어섰다. 미숙 집사는 동치미 국수를 말아왔다. 콩장도 있고 여러 가
지 반찬이 맛깔스럽게 놓여졌다.
남자집사님이 먼저 그린이와 함께 플레이를 했다. 그린은 조금 치다가 잘 안되니까 나에게 배트를 넘겼다. 차고
의 환기 통으로 우리를 들여다 본 강아지가 들어오고 싶다고 끙끙거렸다. 그린은 재빨리 뛰어나가 강아지와 놀
았다. 오랜만에 탁구를 치니까 땀이 비 오듯 했다. 잠시 강아지와 놀던 그린이 들어와서 나는 배트를 넘겨 주었
다. 이번에는 제법 공을 잘 받아 넘긴다. 그린은 재미가 나는지 연신 히히대며 즐거워했다. 미숙집사는 우리에게
주말마다 오라고 했다. 고맙긴 하지만 어떻게 매주 올 수 있느냐고 했다. 그러자 미숙집사는 자기 내외는 일주일
에 세 번씩 체육관이 있는 B교회에 가서 배드민턴을 친다고 말했다. 실내체육관이라서 참 좋아 확실하게 운동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미숙집사의 피부도 싱싱하고 보기에 건강미가 넘쳤다. 내가 솔깃해져서 관심을 보
였더니 이번 토요일에 함께 가보자고 했다. 3개월만 하면 10파운드는 쉽게 뺄 수 있다고 했다. 정말 그럴 것 같
다. 탁구도 이렇게 운동이 되는데 넓은 코트를 뛰는 배드민턴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남자집사님이 수박 한
통을 들고 차있는 곳까지 가져다 주었다. 그린의 짧은 반바지 차림을 보고 미숙집사가 말했다.
“ 오, 그린이 다리가 길고 정말 예쁘다.”
“ 히히, 감사합니다.”
미숙집사의 칭찬 한 마디에 그린의 기분이 한층 좋아졌다.
“ 엄마, 우리 탁구대 사자.”
“ 그러면 좋겠다. 근데 놓을 자리가 있어야지.”
“ 이모네 뒤뜰에다 놓으면 되지.”
어떻게 해야 딸의 몸무게를 줄일 주 있을까 그것이 요즘의 제일 큰 고민이다. 이번 주말에는 배드민턴 라켓을 사
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 참에 너도 나도 확실하게 뛰어보자꾸나
2012.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