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메뉴바로가기
     

개울건너 오두막-네 여자

2014.01.21

상세 본문

네 여자/ 홍순복

 

 오랜만에 여자 넷이 모였다. 제일 연장자인 J언니는 팜 스프링에서, 나머지 셋은 모임 장소인 가든그로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산다. 맛과 가격이 괜찮은 곳을 만남의 장소로 정한다. 식당을 정할 때면 전적으로 L의 의견을 따

른다. 경제학을 공부한 그녀가 알아서 좋은 식당으로 안내하기 때문이다.

  2차는 찻집으로 향한다. 우리의 단골 찻집은 고작 테이블 4개뿐인 비좁은 공간이지만 한국의 추억을 되살리기

에 알맞은 곳이다. 분위기가 아늑하고 맘놓고 떠들며 웃어도 부담 없는 곳이다. 벽에 붙어있는 메뉴가 영어가 아

닌 한국어라서 좋다. 주문을 받는 사람도 한국사람이라서 좋다.

 나는 언제나 쌍화차를 시키고 다른 이들은 율무차와 커피를 각자의 취향대로 주문한다. 웨이츠레스가 차를 가

져오고 한국산 새우깡이나 스낵도 함께 제공된다. 이중도자기로 만든 오래되 보이는 투박한 찻잔은 손잡이가 없

어도 뜨겁지 않아 좋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 보면 찻잔은 비워있고 누군가 팥빙수를 시킨다. 막 갈아낸 얼음 위에 아이스크림과 딸기 파

인애플 키위 바나나 등을 얹어 나오는데 먹음직하고 보기도 좋다. 단 것을 피하는 사람들도 한 스푼씩 떠 먹게 마

련이다. 찬 것을 먹으면 금세 기침을 하는 나는 콜록거리면서도 스푼은 빙수그릇으로 간다.

60대초반의 J 언니는 언제나 정열적이다. 한인이 많지 않은 곳에 살면서 글을 쓰는 시인이며 소설가다. 그 나이

에 볼 수 없는 몸짱이며 예쁜 얼굴이다. 마음 씀씀이가 크고 정이 많은 언니다. J언니는 긴 파마머리를 한다. 남

들이 소화할 수 없는 것을 언니는 정말 잘 한다. 청바지를 입어도 바느질에 소질이 있는 언니는 무언가 자신만의

액센트를 주어 오직 하나뿐인 옷을 만들어 입는다. 언니는 항상 대화의 주도권을 잡는데 우리는 대체로 언니의

열변에 넋을 놓게 된다.

 “ 나 말이야, 우리 집 뒤뜰의 대추나무를 전지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이제 몇 번이나 이 나무에서 대추

를 딸 수 있을까? 이젠 정말 나이를 실감해, 옆에서 하나 둘 가는 것을 보면서……”

“  슬프게 왜, 그런 말을 해요. 그래서 예수님을 믿어야 해요. “

 “ 저것 봐, 너는 교회 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빛나더라.”

 어쩌다 보니 네 사람의 종교가 모두 각각이었다. 가톨릭, 불교, 무신론, 그리고 나는 기독교이다. J언니는 기독

교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만날 때 마다 자신을 위해 기도한 다고 하니까 이제는 고맙다고 말한다. 자신의 행복을

빌어준다는 데 싫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J 언니는 권사의 딸이다. 유년시절에는 주일학교에도 다녔다고 한다.

성인이 되어 교회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 호감적이 아니다. 왜 교인들은 남의 사생활을 그렇게 샅

샅이 살피는지 질렸다고 했다. 공연히 뒤꽁무니에서 쑥덕거리고 이유 없이 참견한다며 싫다고 한다.

그러던 J 언니가 요사이엔 자신의 입으로 하나님을 부르고 있다. 언젠가는 하나님을 믿어야겠다는 말을 슬쩍슬

쩍 한다. 

불교신자인 H는 아주 오래 전 내가 경기도 양평의 외삼촌교회에서 중 고등부 교사를 할 때 만났는데 이곳에서

재회했다. 30년 전 그녀의 결혼식에 나의 목사 외삼촌이 주례를 서기도 했다는데 그런 그녀가 이곳에서 만나보

니 완전한 불교신자가 되어 있었다. 이민초기 친척의 무관심에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새벽기도까지 나가는 열

성신앙인이 너무나 냉정하게 대했다며 그때 불교로 완전히 돌아섰다는 것이다. H는 각종 법회에도 적극 참여하

는 불교계의 리더 급이다. 집에서 기도도 많이 한다고 했다. 전에는 말을 많이 한 것 같은데 지금은 말수가 적어

졌다. 그것은 자신을 비워서 그렇다고 했다. H는 그저 듣기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미국땅에서 나를 홍전도사님, 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바로 H이다. 내가 교회에서 아이들을 지

도했다고 그녀가 날 전도사라고 부르는데 그것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나는 그녀를 볼 때마다 그 전도사라고 부

르는 이름 값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H는 내가 회심시키기에는 너무도 완강한 보살님이다

L은 작은 체수의 동안이지만 배포는 남자 못지 않게 크다. 이곳에서 공부하고 훌륭한 남편 만나 부러울 것이 없

는 커리어우먼이다. 자칭 가톨릭이라고 하는 그녀는 어떤 종교적인 이야기를 해도 거부감 없이 장단을 맞춘다.

부족한 것이 없으니 갈급한 것도 없는 천하태평인 여자다. L은 똑똑하고 야무지다. 재미나고 의리가 있다. 어느

땐 주일 예배시간에 전화를 해 자기는 지금 운동하는데 시간되면 밥이나 먹자는 이야기를 메시지에 남겨 놓곤

한다. 

종교야 어떻든 이 팀을 만나면 즐겁고 재미있다. 나이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민햇수가 비슷해서 서로 마음과 대

화가 통한다.

그녀들의 남편은 내가 굽는 쿠키를 너무나 좋아한다. 그래서 나와 만난다고 하면 흔쾌히 허락을 하고는 자기 아

내가 쿠키상자 들고 오기를 눈 빠지게 기다린다. 그래서 나는 만날 때 마다 의례 쿠키를 구워서 나온다.

  그녀들이 쿠키상자를 하나씩 들고 활짝 웃으며 헤어져 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기뻐한다.

 

2012.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