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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미안해 잘 가

2014.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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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잘 가/ 홍순복

 

 찾았다.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우릴 놀리고 사라지던 쥐들의 비밀통로가 발각되었다. 고양이 샤넬을 데

리고 온 날 형부가 무심코 키친싱크 캐비넷을 열어보고 아하, 하는 소리에 들여다보니 파이프가 나간 곳 둘레가

제법 크게 구멍이 나 있었다. 그리고 캐비넷 주변은 금이 가서 점점 더 벌어질 것처럼 위태해 보였다. 납작 엎드

려서 여기저기를 검사하던 형부는 쥐들의 제2 통로를 찾아내었다. 아래 캐비넷의 작은 조각이 떨어져 나가 쥐들

이 들락거릴 수 있는 크기였다. 형부는 즉석에서 톱으로 준비해온 나무를 자르고 구멍 난 곳은 못으로 박아 막고

금간 곳은 씰을 발라 완전 차단시켰다.

 쥐들과의 전쟁이 끝이 났다. 덕분에 온 집안을 대청소 했다. 오랜만에 집안에 고요를 찾았다. 허지만 샤넬이 온

후에 무언가 집안이 복잡하게 느껴졌다. 식구 하나가 더 늘어 나의 할 일이 많아 졌다. 밖에서 현관문을 열면 샤

넬이 문 앞에 다가와 있었다. 여차하면 밖으로 달려 나갈 모습이다.

그래서 나는 늘 조심해야 했다. 작은 틈만 있으면 샤넬은 밖을 기웃거린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저리가, 샤넬, 하며

안으로 밀어 넣은 후 집안으로 들어선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소파에 앉아 쉴 때면 샤넬은 내게로 다가온다. 그리고 둔탁해 보이는 주먹 쥔 둥근 손으로 내 얼굴을 아주 조심

스럽게 톡톡 두드린다. 자기와 놀자는 표현이다. 내가 왜, 하며 쳐다보면 야옹, 하고 답을 한다. 신기했다. 사람처

럼 내 얼굴을 만지듯 두드리는 모양이 귀여웠다. 뭉툭한 손 안에는 크고 긴 날카로운 손톱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처음엔 몰랐다. 구찌가 샤넬을 향해 다가가면 순식간에 구찌를 공격한다. 그때는 오그리고 있던 손이 쭉 펴지면

서 날카로운 다섯 개의 손톱이 드러나 무섭기 까지 하다. 구찌는 바닥에서 놀지만 샤넬은 높은 곳 어디나 갈 수

있다. 어깨뼈를 들썩거리며 걷는 모습이 사자나 호랑이와 흡사했다.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면 나를 기다린 듯 야옹, 하며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앞서서 간다. 밥을

주기 바쁘게 먹어치운다. 나만 보면 샤넬은 야옹댔다. 앞집 선생말로는 늘 배가 고파서 그렇다고 했다. 아직 아기

라서 많이 먹어야한다고 했다.

 어느 날 직장에서 돌아와 집에 들어서니 남편이 그린이를 향해 큰소리를 내고 있었다. 샤넬을 다시 셀터로 돌려

보내자며 싫다는 아이와 실랑이를 하는 것이었다. 다른 고양이도 다 그렇겠지만 샤넬은 자기 배설물을 모래 속

에 묻어 놓는다. 그런데 그날 샤넬의 배설물을 강아지 구찌 녀석이 파내어 먹으려는 것을 남편이 보고 놀란 모양

이었다. 그린이는 인터넷에서 읽었다며 다른 강아지들도 고양이의 배설물을 먹는 경우가 있다고 말하며.

" 왜, 샤넬을 버리려고 해, 입양을 했으면 힘들어도 다 참아야지 그런다고 버려?"

" 버리는 게 아니야, 있던 곳에 다시 데려다 주는 거지."

" 아니야, 셜터에 데려가면 죽어, 시에서 예산이 없어서 죽인데…..흑흑."

" 그럼 어떻게 하니, 구찌가 똥을 먹는데……"

 요즘 남편은 집에 오면 목이 아프다고 했다. 고양이털 알러지가 생긴 것이다. 오히려 애즈마가 있는 그린이 멀쩡

하고 생각지도 않는 남편에게 이상이 생긴 것이다. 구찌도 가끔씩 샤넬이 공격하니 주눅이 들었는지 피해서 다

니고 털까지 붉은 색으로 변해갔다. 분명 스트레스가 있는 모양이다. 그럴 때면 털 색깔이 변하기 때문이다. 그린

이 고양이를 더 예쁘다고 데리고 노니 구찌 제 딴엔 질투도 날 것이다.그린이 울고불고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견

딜 수 없었다.

다음날 앞집 선생에게 부탁을 했다. 우리 고양이를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으니 알아봐 달라고 했다. 그녀는 15살

된 흰색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독신녀인데 고양이에 관해서는 전문가 이상으로 상식과 정보가 많은 사람이다.

그녀는 이베이에 고양이 사진과 함께 분양하겠다는 메시지를 올리면 된다고 했다. 그녀는 즉석에서 샤넬의 사진

을 여러 번 찍더니 잘 나온 것 두어 장을 골라 웹사이트에 올려주었다.

 월요일 늦은 아침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고양이를 입양하고 싶어서

전화를 한다고 말했다. 내일 집으로 오라고 주소를 주었다.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가슴이 메었다. 잠시나마 정이든 것을 막상 보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울적해졌

다. 더구나 그린이를 달랠 일이 걱정이었다. 직장에서 돌아와 그린에게 샤넬을 데려갈 사람이 내일 올 것이라고

말하자 아이는 또다시 펄쩍 뛰며 대들었다.

" 엄마, 아빠 정말 나빠, 어떻게 이렇게 예쁜 고양이를 버릴 수 있어. 샤넬을 주지 말고 구찌를 버려,"

" 뭐라고, 구찌를 버려, 너 정말 말 다했어. 나와 10년을 살았어."

" 나는 아니야, 그러니까 마찬가지야."

그린이 고의로 나를 건드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아빠가 목이 아프다고 해도 들은 척을 안하는 철부지였

다. 어떻게 겨우 한 달 동안에 그렇게 많은 정이 들었냐고 하자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틀 동안에 그런 사랑을 했다

며 억지를 부렸다.

" 그린아 네가 고양이를 선택하면 나는 구찌와 집을 나갈 거야."

그러자 그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린은 크게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 하나도 갔는데 또 간다고 해, 하나 간 것은 아이돈케어, 나는 기억이 없어. 근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무언지

알아, 떠난다는 거야, 헤어지는 거란 말이야. 흑흑흑……"

하나라는 말은 제 생모를 가리키는 거였다. 순간 가슴이 철렁하며 무너져 내렸다. 이런 등신, 애를 달래진 못하고

같이 싸우기나 하며 아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무언지도 모르고 막말을 했으니 오히려 철부지는 그린이가 아니

고 나였다. 아무 말도 없이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린이 샤넬과 구찌를 양팔에 껴안고 제방으로 데리고 들어갔

다. 마지막 밤이라 생각해서인지 함께 자려는 것 같았다.

 다음날 저녁에 고양이를 데리러 오겠다는 사람이 어린 딸아이와 함께 우리 집으로 왔다. 그 남자의 손에는 샤넬

을 넣어 데려갈 종이박스가 들려져 있었다. 일곱 살 정도의 계집아이는 자기는 이다음에 동물닥터가 될 거라고

했다. 그 아이는 샤넬에게 다가가더니 머리를 쓰다듬었다. 샤넬이 마음에 드는지 아이는 아주 들뜬 모습을 보이

며 기뻐했다. 샤넬도 아이에게 머리를 비벼댔다. 자기네는 좋은 가족이라 샤넬을 잘 키울 거라며 해피하다고 했

다.

그런 아이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샤넬을 보내야 하는 그린은 눈물을 글썽이며 울먹거리고 있었다. 남자가 그린

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린은 남자가 가져온 박스 속에 샤넬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샤넬 이 야옹하고 울었다. 남

자와 아이는 샤넬을 넣은 종이 박스를 들고 빠이,하며 사라져 갔다.

– 미안해 샤넬, 잘 가.―

 

그린은 식탁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2012.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