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건너 오두막-동네 사람들
2014.06.16상세 본문
동네 사람들/ 홍순복
오랫동안 옆집 말지가 외출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유방암이라 약을 먹고 나면 잠이 쏟아져 한차례 낮잠을 잔다고 들었다.
그녀 남편 조지는 늘 나만 보면 놀러오라고 했다. 생각난 김에 나는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말지네 초인종을 눌렀
다.
언제나처럼 조지가 문을 열며 반가워했다. 캄인 순, 하며 내손을 잡아끌었다.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인지 스파게티 냄새가 온 집
안을 떠다녔다. 말지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뭔가를 먹고 있었다.
“ 순, 어서 와요.”
말지는 손짓을 했다. 저녁시간을 방해하진 안했냐고 하니 식사를 다 마쳤다며 빈 접시를 밀어냈다.
늘 그렇듯이 어떻게 지냈냐. 딸과 남편은 잘 지내냐, 라는 정겨운 인사부터 건너왔다.
5년 전엔 그린이가 작고 어렸는데 지금은 숙녀가 되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고 했다. 말지 얼굴을 보니 조금 더 마른
듯 하고 흰 머리는 부스스하고 길어졌다. 허지만 소녀 같은 손짓과 목소리 톤은 여전히 높았다.
요즘 골목에 사람들이 많이 바뀌었단 것이 화두가 되었다.
나도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 먼저 말을 시작했다.
– 개울건너 오기 전 오른쪽에 키 작은 백인여자 살지요? 5년간 인사를 해도 반응이 없어요. 입은 조금 삐죽거리고 눈은 마주치
는데 차가워요. 그 짧은 하이 한 마디만 하면 될 것을 이웃에 살면서 왜 그러는지 그럴 때마다 기분이 상해요. 이젠 나도 지쳐
알은 척 말자 결심했다가도 습관적으로 하이, 하게 되요. 내가 아시안 이라서 그런가요?-
그러자 조지는 내 마음을 알고도 남는 다는 따뜻한 웃음을 지었다.
– 이름이 제니퍼에요. 나도 그녀 입을 열기위해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모두에게처럼 처음 그녀를 봤을 때 하이, 하며 말을 건
네자 눈만 마주치곤 자기 집으로 휑하고 가 버렸어요. 그래도 계속 나는 인사를 했어요. 몇 달이 지나자 그녀는 하이, 하는 정
도로 달라졌어요. 자기 방어가 강한 사람이에요. 나이는 60대인데 키가 작고 아담해서 젊어 보이지요. 결혼한 적이 없어요. 차
가운 여자에요. 알고 보면 속마음은 괜찮은데 왜 그렇게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지 나도 이해가 되지 않아요. 요즘은 음
식을 만들어 우리 집에 들고도 오는 그런 사이가 됐어요. 하하.―
그렇게 조지가 말하니 그녀를 볼 때마다 거북스럽고 불편했던 순간들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반대로 그 옆에 사는 샌디는 친
절하고 늘 웃는 얼굴이라 기분 좋게 하는 여자이다.
샌디도 싱글이고 결혼한 적이 없다고. 그런데 12형제의 맏이라 동생들을 돌보느라고 마음이 넉넉해진 것 같다고 했다. 가난했
던 부모님을 도와 동생들 키우느라 결혼시기를 놓친 것 같다고 했다. 지금은 외국여행을 자주 다니며 형제들과 재미나게 오가
며 지낸다고 했다. 그럴 때 마다 조지가 공항에 픽업을 한다고 했다.
허긴 조지와 못 지내는 사람은 동네에 아무도 없다.
내친김에 나는 중국여자에 대해 물었다. 개울 건너는 좁은 다리에서 처음 그녀와 맞닥트렸을 때 새로 이사 온 것 같아 내가 먼
저 인사를 했다. 허지만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는 제니퍼같은 입모양으로 삐죽거리며 지나갔다. 나는 그녀가 영어를 전혀
못하는 미국에 막 온 이민자거나 아니면 말을 못하는 여자로 알았다. 날씬하고 멋 내는 스타일이었다. 그 반면 집에 있는 나는
화장도 하지 않고 편한 옷차림으로 가끔씩 강아지를 데리고 골목을 지난다.
어느 날 우연히 S집사를 통해 자기 딸과 그녀의 딸이 초등학교 친구란 것을 알았다. 그녀는 호주에서 공부해 석사학위도 있고
교회도 나간다는 이야기며 타주에선 크고 좋은 집에서 살다왔다고 했다. 그녀는 이웃에 있는 새들백교회를 나갔다가 아시안이
너무 많아 여기가 미국인가 아시아인가 하며, 다른 미국장로교회에 등록해 나간다고 했다. 주류사회의 일원이고 싶어하는 사
람 같았다.
조지는 웃으며 그녀에 대해 말했다. 그녀와 한 번 이야기 해본 적이 있는데 영어를 잘하더라고 했다. 이름이 윙이라고 했다. 나
는 윙 발음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조지는 그래도 다음에 윙을 만나면 하이 윙, 하며 아는 체를 하라고 했다. 윙이 아니라 잉이 되어 나왔다. 그러면 그녀가 놀랄
것이며 달라질 거라고 했다. 노력해보겠다고 하며 일어섰다.
조지는 나서는 내 뒤에 대고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잊지 말아요. 그러면 언젠가 마음을 열거에요. 조지의 부탁대로 하이 윙, 해
보았다. 잘 안 된다. 자꾸만 잉이 된다.
윙이던 잉이던 그녀를 만나면 내 입이 열리기나 할런지 나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