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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연례행사

2014.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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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례행사 / 용우

 

-오늘 기쁜 다락방의 식당봉사 마지막 날입니다. 돼지불고기와 상추쌈을 준비했습니다. 꼭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주일 이른

아침 카톡이 울려서 열어보니 순장님의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그러잖아도 지난 한 달간 주일마다 몸과 마음을 분주하게 했던 식당봉사를 끝내게 되어 홀가분하던 참이었다. 더하여 돼지불

고기에 상추쌈까지 준비했다니 즐거움이 배가했다.

아내는 2부, 나는 3부 예배 후에 주방봉사를 한다. 이때만큼은 어쩔 수없이 축도시간에 살그머니 빠져나와 식당으로 달려가야

한다. 예배를 마친 교우들이 밀려들기 전에 현장에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식당주방으로 들어가 앞치마부터 걸쳐 입고 내가 할 만한 적당한 자리에 끼어들어가는 것이 순서이다. 눈치가 빨라야 한

다. 공연히 밥 푸는 곳이나 국건더기 얹어주는 작업대 근처에서 어정대다가는 여자집사님들에게 걸치적거린다고 핀잔맞기 십

상이다.

 그동안 1년에 한 차례씩 돌아오는 주방봉사 경험으로 미루어, 남자들은 대게 뜨거운 국솥 근방이나 주방 뒤편의 창고겸용 설

거지 방을 차지하는 게 상례이다. 그러니까 외부 식당으로부터 배달되는 6개의 대형국솥을 개스불 위로 들어 올리고 내리는

일과, 펄펄 끓는 국솥에서 뜰채로 건더기를 건져내는 작업, 그리고 배식을 끝낸 대형국솥과 밥솥을 설거지하는 일이 그것이다.

 축도 중에 빠져나와 서둘러 주방으로 달려갔더니 순장님이 우선 식사부터 하라고 등을 밀었다. 일도 안하고 밥부터 먹느냐고

했더니 오늘은 남자들이 많이 나와서 힘든 일은 일찌감치 끝내놨다고 했다. 둘러보니 정말 모든 국솥의 건더기가 다 건저 올려

져서 이백여 개의 밥공기 속에 얌전히 담겨있었다.

 나는 상추쌈에 돼지불고기를 싸먹으며 설거지 방을 떠올렸다. 이번 봉사기간에는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던 그곳을 오늘만큼

은 외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족히 20~30파운드쯤 되는 국솥을 이리 뒤집고 저리 젖히며 깨끗하게 씻어내려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멋모르고 설거지 방에 들어갔던 남자들은 너나없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오기 일쑤이다.

 지난주에 설거지 방에 들어갔던 이는 우리 기쁜 3순의 이 집사였는데 그날 집에 돌아가 자기 와이프에게 -사람들이 설거지 방

근처에 오지 않는 이유를 알겠다.-고 하더라는 말을 전하며 아내는 -주은이 아빠가 국솥 설거지하느라 힘들었던 모양이야,- 하

며 깔깔 웃었었다.

주방봉사를 시작한 첫 주에는 우리 순의 가장 젊은(노총각으로 결혼 한 지 1년이 채 안된) L 집사가 펄펄 끓는 국솥에서 뜰채로

건더기를 건져올리다 손가락을 데어서 한 동안 고생을 하기도 했다. L 집사는 그때 면장갑을 끼고 있어서 화상을 더 심하게 입

었다.

 대충 식사를 끝낸 나는 싱크대위에 쌓여있을 국솥을 떠올리며 설거지 방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그곳에

누군가 열심히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어이구, 수고 많으십니다,- 인사부터 하고 바라보니 평소 교회봉사를 열심히 하는 분이

었다. 같은 다락방에 속했다는 것을 봉사 끝 날에야 알게 되었다는 것에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나는 항상 직장에서 늦게 퇴근

하므로 순 개강과 종강식에 참석하지 못한다. 그래서 누가 같은 공동체이고 다락방에 속해있는 지를 이렇게라도 만나기 전에

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제는 제가 할 테니 집사님은 좀 쉬십시오.- 내가 그렇게 말하며 수세미를 집어 들자 그 분은 선선히 –네, 하던 것이나 마저

끝내고요.- 했다. 설거지 방 싱크가 제법 크기는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하기에는 부족하다. 사람몸통보다 더 큰 국솥을 이

리 뒤집고 저리 휘두르며 닦아야하기 때문이다.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행군 국솥을 바닥에 내려놓은 그 분이 머리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한다. 나도 마주 허리를 접어 답례를 했

다. 임무교대가 이루어진 것이다.

 슬며시 설거지 끝난 그릇을 세어보니 국솥이 두 개, 밥솥이 세 개였다. 그렇다면 아직 국솥이 네 개, 밥솥이 하나가 남았다는

말이다. 어쩌면 밥을 퍼 담았던 커다란 양푼 두 개까지 이 방으로 넘어올지도 모른다.

나는 링 위에 오르는 파이터처럼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싱크대 발판에 올라섰다. 머잖아 환한 미소를 띤 구원투수가 출현

할 것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