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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월드컵증후군

201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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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증후군 / 용우

 

 한국인이 4년에 한 번씩 겪어내야 하는 스트레스가 있다. 바로 월드컵증후군이다. 그것은 국내에 거주하는 사람이든 해외에

사는 사람이든 한국인이면 예외 없이 해당되는 일이다.

 지난 남아공월드컵 때는 이곳 시간으로 새벽에 중계를 해서 세 식구가 선잠을 깨어 엘에이로 달려가기도 했다. 윌셔가에 있는

라디오코리아 잔디광장과 한국일보사가 주관한 서울공원 옆의 놀만디 가의 합동응원장을 번갈아가며 응원을 다녔다.

 그런데 이번 브라질 월드컵은 항상 낮 시간에 중계를 해서 식구가 함께 합동응원장을 찾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러시아와 치

룬 17일의 첫 게임은 화요일 낮 3시여서 식구는커녕 나 혼자 가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러시아전이 있기 2~3일전부터 엘에이에 사는 친구들이 어디에 모여서 응원을 하면 좋겠느냐고 그룹채팅방에 불을 지폈다. 라

디오코리아냐, 주님의영광교회냐, 하다가 코리아타운플라자 푸드코트로 낙착이 되어서 직장에 조퇴를 하고 달려가서 응원을

했다.

브라질월드컵 두 번째 알제리와의 경기는 다행스럽게도 일요일어서 또다시 직장에 양해를 구해야할 일은 없어졌다. 이번에도

역시 그룹채팅방에 불이 났다. 헌데 어디로 모이느냐는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글렌데일에서 식당을 하는 친구가 풍족한 먹

거리와 자기 식당의 대형 TV를 앞세워 합동응원 장소 유치권을 차지했다.

 그렇지만 나는 주일예배도 드려야하고 거리도 멀고 해서 일찌감치 포기했다. 더구나 지난 러시아전 때 집에서 혼자 관전했던

아내의 불평이 있었던 터라 이번에는 빠져나갈 수 없게 되었다. 우리 온누리교회에서도 3부예배후에 전교인이 함께 관전하며

(예배시간 관계로 후반전만)응원한다고 했지만 나는 전반전도 보고 싶어서 1부 예배를 드리고 아내와 같이 집에서 시청했다.

 그런데 우리 내외의 열렬한 응원에도 불구하고 한국팀이 알제리에게 4:2로 지고 말았다. 두 골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승률

이 같을 경우 계산되는 골득실에서도 불리하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 한국이 강호 벨기에를 이기고, 러시아가 알제리를 누른다

는 실낱같은 희망이 이루어졌을 때를 가정하는 말이다. 다음 경기에서 알제리가 러시아를 이겨버리면 이런 소망은 단번에 날

아가 버린다.

 어깨에 힘이 쭉 빠진 우리 내외는 서로 쳐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경기에 몰두하느라 점심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나

는 월드컵은 월드컵이고 점심은 점심이니 식사나 하자고 했다. 내 말에 아내는 그린이 데리러 교회에 가야한다며 혼자 먹으라

고 했다. 아내는 떠나고 나는 식은 치즈버거(식사준비로 TV시청 방해할까 싶어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치즈버거 두 개를 사

왔었다)를 먹으며 탈출구를 모색했다.

 벽시계를 째려보며 머리를 굴렸더니 잠시 후 3시에 미국 팀의 경기가 시작된다는 생각이 떠올라주었다. 그러고 보니 세 식구

모두 시티즌이면서 왜 한국 팀의 경기에만 열중했나 하는 의아심이 들었다. 첫 경기에서 가나를 이긴 미국은 승점 3점으로 16

강 진출도 유력한 팀이다.

 식사 후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나는 아내가 돌아오는 소리에 일어나 껐던 TV를 다시 켰다. 언제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포루투

칼이 미국을 1:0으로 앞서고 있었다. 우리는 미국팀을 열렬히 응원했다. 후반 중반쯤에 미국이 연속 두 꼴을 차 넣어 2:1로 전

세를 역전시켰다.

 힘이 났다. 유에스에이! 를 연호했다. 그런데 포루투칼이 후반종료 10초를 남기고 동점골을 차 넣었다. 2:2 무승부가 되며 끝

이 났다. 미국은 한 게임을 남긴 상황에 승점 4점을 확보했다. 좋은 성적이다.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치며 TV를 껐다. 그런데 화면이 꺼지자마자 득달같이 한국 팀의 패배가 떠올라왔다. 아내를 쳐다

보니 역시 같은 생각을 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다시 우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