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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선물

2014.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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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 용우

 

 세면대 앞에서 양치질을 하다가 아내에게 물었다.

“결혼기념일 선물로 무얼 해줄까?” 화장을 지우느라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아내는 당장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예산이 얼만데?” 나는 둘째손가락 하나를 아내 코앞에 펴들었다.

“정말?” 아내는 놀란 눈을 크게 뜨며 탄성을 발했다. 나는 아내의 들뜬 모습에 놀라 내렸던 손가락을 얼른 다시 펴들고 물었다.

“이게 얼만데?”

“천 불 아니야?”

“처~언 불?”

 아차 싶었다. 평소 안하던 짓을 한 게 잘못이었다. 늘 백 불 정도의 예산으로 스킨로션이나 손지갑 따위 선물이나 했었는데,

갑자기 손가락을 펴들어 기대치를 부풀려버렸다. 허지만 순간적으로 마음을 바꿨다. 틴에이저 딸도 잘 키우고, 밤마다 내 지친

몸을 마사지해주는 아내에게 이번만큼은 큰 선물을 해주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맞아, 천 불이야. 말해, 뭘 갖고 싶은지……. 오, 명품가방 하나 사줄까?”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지만 말을 해놓고 보니 정말 그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 명품가방에 대한 착각으로 얼굴

붉혔던 일이 그 순간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아내와 결혼생활을 하던 어느 순간에 문득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내가 명품을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옷이나

구두는 물론, 여자라면 으레 어깨에 메고 다니는 가방도 명품이라고는 없었다. 언젠가 ‘당신은 명품을 싫어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잘만 고르면 싼값에 살 수 있는 물건이 널려있는데 왜 허례허식을 하느냐고, 힘들게 벌어서 그런데다가 낭비하

는 사람들 보면 속없어 보인다고 정색을 했다.

 야, 내가 마누라 하나는 잘 얻었구나! 나는 단번에 감격했다. 나 역시 아내의 생각과 한 치도 다름없는 실속주의자이기 때문이

었다. 실지로 나 역시 명품이라고는 손지갑 하나 지니지 않은 사람이다.

 그 이후로 나는 아내의 그 선언을 철석같이 믿었다. 가끔 문인협회 행사라거나 순모임 같은 데서 기회가 닫는 대로 아내의 실

용주의를 자랑했다. 그런데 얼마 전 아내의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에 끼었다가 무심코 아내의 명품관을 또 앵무새처럼 떠벌렸

다. 그런데 그렇게 믿었던 아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여보, 내가 왜 명품을 싫어하겠어, 우리 형편에 맞춰 살겠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그렇게 하는 거지. 사주기만 해봐, 얼마든지

걸치고 다닐 테니까.”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배반이었다. 충격이었다. 이 여자가 그 여자 맞나 싶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그게 그런 거야?’ 하고 바보처럼 헤, 웃고 말았다.

 “내가 명품 싫어한다는 말을 당신이 자꾸 하니까 공연히 심사가 뒤틀려서 그랬어, 정말 나는 사치하는 사람이 아니야, 분수껏

사는 여자라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내가 그렇게 말했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생각나서 나는 올 결혼기념 선물로 반드시 명품 하나를 아내에게 선물하고 말겠다는 다짐을 했다. 며칠 후, 나는 아

내에게 무엇 생각해둔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내 말에 아내는 며칠 전의 흥분이 반쯤은 가신 얼굴로 기쁘지 않게 말했다.

 “언니가 아울렛에서 코치가방을 백 불에 샀는데 아주 좋데, 나도 아울렛에서 어깨에 메는 가방이나 하나 살까봐.” 아내의 생각

에 나는 즉각 반대했다.

“여보, 아울렛제품은 정품이 아니라잖아, 아울렛에 팔기위해 별도로 만드는 저가 제품이라는 거 몰라?”

 “그렇다고는 해, 하지만 그게 그거지 뭐 가방이 별다르겠어.” 아내는 그렇게 말하며 내 눈치를 힐긋 살핀다. 돈을 절약하고 싶

다는 의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 반응이 어떻게 나오나 떠보는 게 분명했다. 나는 모른 체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아울렛은 않되, 사우스코스트플라자로 가, 노스트롬으로 가자고, 반드시 정품을 사주겠어, 이거 안보여? 예산이 이거라니까.”

나는 둘째손가락을 펴들고 흔들었다. 그제야 아내는 의혹의 표정을 풀고 며칠 전처럼 정말? 하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