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책 읽어주는 목사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_ 임용성 담당목사
2019.08.20상세 본문
[임용성 담당목사 칼럼]
책 읽어주는 목사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 데이비드 실즈 저 / 문학동네 / 온누리신문
사람은 살아왔던 날들을 기억하는 ‘회상’과 남은 날을 헤아리는 ‘추상’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살아야 하는 것은 현재인데 죽어야 하는 일은 미래다. 그래서 ‘잘 살아야지?’ 하는 현재의 자기 독백 속에는 ‘언젠가는 죽겠지’라는 미래에 대한 자기 암시가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살아야 하고, 또 죽어야하기에 잠시라도 우리는 죽음에 대한 차별적 묵상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예컨대, 종교적 묵상과 철학적 사고와 시적 감수성 같은 것이다. 오히려 순수한 자연인으로서 죽음을 생각하다 보면 오히려 죽음은 해학적 수용이 가능하며 즐거운 포기가 가능해진다. 역설적이게도 더 의미 있는 죽음을 바라볼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이 책을 보면서 그런 것을 느꼈다. 바로 ‘데이빗 실즈’의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라는 책이다.
자기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를 실감나게 풀어냄을 통해 지루함을 없앴고, 의학적-사회적 통계를 사용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며, 무엇보다 시원하고 솔직한 문체를 통해서 죽음에 대한 해학적 묵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평균적으로 기혼자가 독신자보다 오래 산다(충격적인 사실은 기혼 여성보다 기혼 남성이 받는 혜택이 더 크다는 것이다).” 독신을 선언하는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말이다. 행복한 가정을 꿈꿀 때 오래 살 수 있다는 의미이다. 오래 산다는데 해 볼만 하지 않는가? “맏이가 동생보다 오래 산다. 아이를 둔 여성이 아이가 없는 여성보다(아주 조금) 오래 산다. 최고경영자가 부사장보다 오래 산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 무신론자보다 오래 산다.”
예수님을 믿은 것이 정말 잘 한 일 같다. 오래가 아니라 영원히 살 수 있으니. “키 큰 사람이(남자는 183센티미터 이상, 여자는 170센티미터 이상_동양기준은 달라야하지 않을까?) 키 작은 사람보다 3년 더 산다.” 성도는 두 부류다. 키 작은 성도님, 키 큰 성도님! 나는 키가 큰 목사다. 목사인 나는 내 느낌을 말하기가 곤란하다.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이 토박이보다 3년 더 산다. 일본인의 기대수명이 세상에서 가장 길고(82년), 잠비아가 가장 짧다(33년). 100세를 넘게 사는 사람들은 단정적이고, 의심이 많고, 실용적이다. ‘병을 이기는 것은 항상 재수 없는 인간들이다.’” 이 글을 읽으며 자신이 오래 살 수 있는 사람인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오래 산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당신은 지금 어떤 사람인가? 이 책은 또 여러 위인들의 죽음에 대한 솔직한 대면을 소개하기도 한다.
“뉴욕 센트럴 철도의 회장이었던 윌리엄 H. 밴더빌트는 1885년에 말했다. “내가 느끼는 진정한 충만감과 기쁨은 재산이 50만 달러에 불과한 내 이웃사람의 것보다 결코 많지 않다.” 프로이센의 왕비 루이제는 말했다. “나는 왕비이지만 내 팔을 움직일 힘조차 없다.”
에스파냐의 왕 펠리페 3세는 말했다. “통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좋았을 것을. 내 왕국에서 살아온 세월을 자연 속에서 고독하게 살았다면 좋았을 것을. 오직 하나님과 함께 지냈다면 좋았을 것을. 그랬더라면 얼마나 평온하게 죽었겠는가. 얼마나 당당하게 하나님 권좌 앞에 나아갔겠는가. 죽음 앞에 더 큰 고통을 겪을 것이라면 그 모든 영광과 재물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마키아벨리는 말했다. “나는 천국이 아니라 지옥에 가고 싶다. 지옥에서는 교황들과 왕들과 군주들과 함께 즐기겠지만 천국에는 거지들과 수사들과 사도들만 있을 테니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음은 막연하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현실인 것을 느꼈다. 거대한 삶에 관한 철학이 죽음 앞에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지, 죽음은 포기할 수 없는 필연적 수용인 것을, 그리고 그 필연적 수용이 오히려 가장 완전한 회복인 것을, 하나님 안에서 죽을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인지를 이 책을 통해서 경험해 보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