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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이르는 순학 / 이 용우

예배시간을 기다리며 설교노트에 성경본문을 쓰고 있는데 성가대에 있어야할 아내가 옆으로 다가와 빠르게 속삭였다.
-여보, 김 형성 씨가 권 목사님 저서를 자기가 선물한다고 사지 말래. 우리 순원들 몫까지 모두 자기가 사서 저녁에 순예배 때 나눠준다는 거야, 알았지?- 나는 귓가에 쏟아지는 아내의 말에 우선 고개부터 끄덕이고 뒤미처 이해를 하느라 잠시 머리를 굴려야 했다. 우리 순은 토요일에 모임을 갖는데 어제는 특별히 ‘움직이는 교회’ 세미나와 집회가 열려서 오늘로 하루 미뤄졌다. 한 순간 후 상황을 파악한 나는 가슴에 찡, 하는 감동을 받았다.
아니, 이렇게 빨리 되갚을 게 뭐있어? 정말 딱 부러지는 사람이네, 아무튼 훌륭하고 사랑스러운 순원이야…. 나는 혼자 말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김 형성 순원의 온화한 얼굴을 떠올렸다. 김 형성 씨는 우리교회등록교인이 된지 1년이 채 안되며, 우리 기쁜 6순에 배정받아 함께 교제를 나눈 기간 역시 이번 봄 학기 3개월이 전부일 정도로 새내기교우이다.
퇴직교사인 아내와 대학생 자녀 둘을 둔 그는 얼바인과 로렌하잇 두 곳에 한국 유명제품 프렌차이즈 사업을 하는 50초반의 모범적인 가장이다. 가정과 사업에서의 성실함 그대로 순예배에도 한 번 결석 없이 시간 전에 참석하는 모범 순원이다. 때때로 같은 순원이 운영하는 업소를 찾아 순카톡방에 인증샷을 올리는 따듯한 성품과, 2부성가대원인 아내의 권유에 부부가 함께 두 말없이 찬양대로 섬기고 있는 순종과 충성심을 두루 갖춘 교우이다.
지난 3월 마지막 주 토요일 새벽예배에 중국과 북한을 중심으로 의료사역을 하는 심장전문의 정 수영박사가 초대되어 설교와 간증을 했다. 그 분의 여러 예화 중에 다음에 방문하면 제일 먼저 당신을 치료해주겠다는 말을 믿고 1년 넘게 기다린 북한의 30대 심장병환자의 일화가 너무도 감동적이었다. 계획대로라면 6개월 뒤에 갔을 텐데 마침 그때 중국에 사스가 발생하여 어쩔 수없이 1년 후에 평양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죽은 줄 알았던 그 환자는 심장판막이 세 개나 막힌 채 살아서 오로지 정 박사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다. 의학적 판단으로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병원복도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한 정 박사는 신기의 수술 실력으로 기적처럼 그를 살려냈다. 나는 설교 후 로비에서 판매한 정 박사의 책 [심장이 뛴다]를 여섯 권 사서 그 날 저녁 순예배 때 순원 다섯 가정에 한 권씩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오늘 김 형성순원이 권 목사님의 저서 [사랑에 이르는 신학]을 전체 순원들 몫까지 모두 샀다는 것이다. 성가대 연습으로 나보다 늦게 돌아온 아내가 두툼한 책 한권을 내밀었다. 다른 순원들의 것은 저녁 순예배 때 가져온다며 아내에게 무거우니 먼저 받으시라고 했단다. 책을 받아보니 흰색 하드커버장정으로 깨끗하게 포장한 책의 무게가 제법이어서 표지를 넘겨보니 435쪽이나 되었다. 켐브릿지 신학박사님의 저서답게 포장과 무게만으로도 독자를 압도하고 있었다. 나는 호기심을 감출 수 없어 소파에 자리를 잡고 책장을 넘겼다.
각계 인사들의 추천서를 읽은 후 들어가는 글에서 ‘사랑의 신비는 모든 사람이 기필코 탐험해야할 깊고도 풍요로운 하나님의 공간’ ‘신학은 메마른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혈액을 공급하는 심장’이라는 대목에서 재미없겠지만 신앙인으로서 끝까지 독파해야할 필독서라는 마음으로 단단히 마음무장을 했다. 그런데 몇 장 넘기지 않아 나는 “오, 재밌네! 맞아요, 맞아!”하고 무릎을 치며 공감하게 되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사랑의 공동체다]라는 소제목 아래 관계의 중요성을 쓴 글 중 ‘혼자서 외롭게 보양식을 먹는 것보다 친한 사람들과 함께 라면을 끓여먹는 것이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인다.’ 라는 대목이었다. 어느 집이나 다 그렇겠지만 가족의 건강을 염려하는 주부들의 지나친 열심에 많은 남자들이 곤욕을 치른다. 나 역시 건강이라는 미명아래 허구한 날 거칠고 딱딱한 현미밥과 들큰찝찔한 브로콜리와 비트셀러드를 차려내는 아내의 횡포에 불만이 많다. 이제는 목사님의 책을 식탁 곁에 두었다가 현미밥그릇이 올라오면, “여보, 나 현미밥 안 먹어, 라면 끓여줘”라고 말한 뒤에 아내가 눈에 불을 켜면 “사랑에 이르는 신학 오십팔 쪽 읽어봐!” 하면 될 것이다.
문이 열리고 왁자지껄한 인사가 쏟아지더니 김 형성 씨 부부와 전 수영 권사님이 들어오고 잠시 후에 이 명석, 인숙권사님 내외가 오셨다. 그런데 인숙권사님 손에 들려 있는 비닐봉지가 예사롭지 않았다. 보통 순예배에 파틀럭으로 들고 오는 음식그릇 모양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인숙권사님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자랑스레 비닐봉지를 열어 보이며 말했다.
-제가 순원들 가정에 한 권 씩 드리려고 목사님 책 샀어요.- 그러며 책을 꺼내들었다. 그 순간 둘러선 사람들은 어머나, 오 마이갓, 하고 탄성을 지었다.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벌게진 김 형성 순원이 자기 봉투를 열고 책을 꺼내더니 인숙권사님에게 내밀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이 권사님은 “집사님도 사셨어요?” 하며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호호 웃었다. 모두 유쾌한 웃음을 신나게 터뜨렸다.
-그럼 이 책을 어떻게 하지요?- 인숙권사님이 물었다.
-어떻게 하긴요, 저 주시려고 사오셨으니까 감사히 받아야지요. 그리고 김 형성 씨와 권사님은 서로 주고받으세요, 책 사실 때의 마음 그대로 나누세요.- 나는 얼른 그렇게 말했다. 내 제안에 모두들 맞아요, 그래요, 하고 하하, 깔깔, 웃으며 책을 주고받았다. 우리 기쁜 6순의 봄 학기 마지막 순예배는 그렇게 ‘사랑에 이르는 순학’으로 아름답게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