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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권의 영혼의 창 – 하와는 자궁이 있었을까.

2013.10.14

상세 본문

*하와는 자궁이 있었을까.

 

하와는 자궁이 있는 상태로 창조되었을까? 중요한 이슈는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돕는 베필’로 번

역되어 있는 에제르(ezer, 창 2:18)가 복음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밝히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

다움(시 27:4)을 조명하고 싶다.

그동안 ‘에제르’라는 히브리 단어는 앞서 말한 대로 (결혼생활을) ‘돕는 베필’로 번역되어 왔다. 여기에 대

한 반론을 제기하려는 것은 전혀 아니다. 세계적인 신학자 워턴(Walton) 박사가 “혹시 생명나무는 디톡

스 기능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면서 자신의 창세기 주석서에 던져 놓은 재미있는 한 줄처럼 창세기 2

장의 가을 우물에 그리스도의 작은 파동을 울리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하시면서 다음 말씀을 반복하셨다. “보기에 참 좋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 당연히 좋

을 수밖에. 그런데 딱 한 군데 “보기에 좋지 않다”고 한 부분이 있다. 남자가 독처하는 상태다. 하나님은

여자를 만드신 이후에야 비로소 “보기에 참 좋다”고 하셨다.(창세기 1:31)

하나님은 왜 아담의 독처를 안 좋게 보셨을까? 아담은 불완전하게 창조되었나? 탈봇신학교의 구약학 교

수 커리스 박사는 “아담은 하와가 필요할 만큼 조금 부족하게 만들어지지 않았을까”라고 했지만, 나는

아담 창조의 완전성을 믿는다.

하나님은 이런 아담에게 에제르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우선 에제르는 ‘돕는 베필’로 번역되어 있지만, 원

어로는 ‘돕는 자’이다. 아담의 무언가를 돕는 존재가 하와가 될 것이었다. 강사문 박사는 아내가 남편의

결정이나 남편의 생각 등을 도와서 균형 있는 결혼생활을 돕도록 만들어졌고, 에제르(돕는 자)는 바로

그런 뜻이라고 했다. 논지전개에 일부 수긍은 하나 다른 측면이 있지는 않을까. 곧 이어질 창세기 3장에

서 인간의 타락이 숨 가쁘게 전개되고, 가죽옷을 지어 입히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한 구속사적 방법

을 보여주시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2장에서 에제르(돕는 자)를 주신 것은 단순히 결혼생활의 확립이라

는 측면 이상의 구속사적 의미가 있지 않을까.

아담의 독처를 좋지 않게 보시고 에제르를 염두에 두시는 구절(창 2:18)의 바로 앞 절은 선악을 알게 하

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는 내용이다(창 2:17). 즉, 2장 17절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역사를 이미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아담의 타락을 이미 내다보고 계셨을 것이라는 거다.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는 명령 뒤에는 아담이 타락하게 될 것이 예견되어 있고, 하나님은 그 사실을 모

두 아심과 동시에 아담의 구속을 위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이미 준비시키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 구절에서 하나님은 아담을 구속시킬 방법을 보여주고 계신다. 신이시자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담의 계보에서 태어나 아담과 택하신 인류를 구속해야 하는데, 그 프로그램을 2장 18절에

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아담의 독처가 좋지 못하니 에제르(돕는 자)를 붙여주겠다고 하신 것은 하와라는 아

내를 통해 자손이 태어나는 일이 있게 되고, 그 자손을 통해 아담의 구속을 돕는 자, 곧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에제르는 남편의 결정과 생활을 돕는 여성의 역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담을 비롯한 택하신 자들의 구원을 가져올 메시야의 탄생을 돕는 여성의 역

할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메시야의 탄생을 돕는 자가 바로 하와였기에 하와는 창조될 때부터 자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

론이 가능한 것이다.

아담이 아직 타락하기 전부터 아담을 사랑하시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 가운데 보내주시기로 하신 하

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가 에제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주시었고, 우리가 살아갈 장래의 모든 일을 이미 아시고

그 길을 친히 먼저 가고 계시는 분이시다. 그 사랑과 은혜와 능력을 바라보면 나는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다. 내 능력과 지혜가 뭐 그리 대단할 거라고 사사건건 달려들어 내 미래의 두려움을 잠재우려 했으

며, 내 과거의 수치를 가리려 했던가. 손 떼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그가 하시는 일에 대한

경외는 우리의 안식을 불러오고, 그 안식 안에서 우리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불꽃 같이 우리의

손을 굳게 붙들고 계시는 승리자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하와의 자궁이 메시야의 도래를 품고 있는 영광스러운 가치였듯이 우리 곁에 있는 여성들은 메시야의

도래를 준비하는 자들이었고 또 그 후예들인 것이다. 그들과 함께 영광스러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쁨으로 기다린다. 할렐루야.

 

/ 차명권 목사(온누리교회, HEART mini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