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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묘지지도

2014.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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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 지도 / 용우

 

지난 부활주일에 로즈힐 공원묘지를 갔다. 지난 해 4월에 돌아가신 박 만영 시인의 일주기가 되어서였다. 떠나기

전 아내는 형제들과 저녁식사 약속이 잡혀있으니 다른 곳은 들리지 말고 박 시인 묘소만 얼른 다녀오라고 했다.

나는 그러마고 대답했지만 막상 꽃집에서 조화를 고르며 마음이 달라졌다. 기왕에 가는 길인데 다른 이들은 외면

하고 달랑 기일 맞은 박 시인의 묘소만 들른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어이, 이 총무 고민하지 말고 퍼뜩 올라와- 로즈힐 공원묘지의 가장 높은 지역에 자리 잡고 누워 있는 소설가 박

총장은 당연히 그렇게 말하리라.

-이 용우 씨, 나 안보고 그냥 갈 거야? 그러면 너무 서운하지.- 공원묘지 중간쯤 로즈힐드라이브에서 한 발짝만 들

어가면 되는 곳에 자리한 수필가 정 선생님의 애련한 목소리도 나를 붙들 것이 뻔했다. 더구나 그 날은 부활주일

이 아닌가. 나는 주저 없이 꽃다발 세 개를 집어 들었다.

로즈힐 공원묘지 입구에 도착하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묘지 지도를 펼쳤다. 우선 기일이 된 박 시인의 묘소가

어디인지 먼저 살폈다. 묘지 지도에는 굵은 화살표를 따라 자세한 설명이 적혀 있다.

(박 만영 시인 / 2013년 4월 14일 / Garden of Serenity 지역 3968 번지 위쪽으로 4번째 줄. 작은 아들 묘와 나란히

붙어 있음.)

박 시인을 지나 다른 망자의 묘지설명도 읽어 본다.

(정 옥희 수필가 / 2011년 10월 22일 / Lupine Lawn 지역 4441번지 앞의 나무를 따라 곧바로 올라가면 중간쯤 지

나 다음 소나무 앞에 있음. 위쪽 길에서 내려오는 게 더 가까움.)

(박 요한 총장 / 2012년 10월 4일 / Dawn Terrace 지역. 특별한 지역이라 번지가 없음. 복층구조 묘역의 중간층. 컬

러풀한 호화비석이 부조된 중국인 비석 앞쪽에 위치하였음.)

제일 위쪽의 박 요한 소설가 묘지 설명을 읽으며 웃음이 났다. 이 분과는 1980년대 중반 크리스천문학회 회장으

로, 나는 총무라는 직책으로 만나 인연을 맺었다. 그래서 항상 나를 ‘이 총무’라고 불렀다. 소설가답게 상상력과 더

불어 공상력까지 풍부한 분이었다. 지병으로 세상을 뜨는 날까지도 신학대학 총장직함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우리

문우들은 그를 총장님으로 불렀다.

수필가 정 선생님은 초여름에 들어서기 무섭게 복숭아 따러오라, 자두 따러오라, 하며 롤링힐스 언덕으로 불러올

리던 다정다감한 분이었다. 모임 때면 뒤뜰 닭장에서 생산한 계란을 손수건에 싸들고 오셔서 ‘이거 올개닉 달걀이

야. 삶아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요 파란색 달걀은 아프리카산 암탉이 낳은 거야, 참 색깔 묘하지?’ 하며 내

손에 쥐어주시곤 했었다.

세 망자의 묘소 위치로 보아 먼저 박 시인 묘에 헌화하고, 위쪽의 박 총장을 돌아내려오다가 수필가 정 선생님 묘

를 찾아보고 돌아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섰다.

나는 공원묘지의 중앙도로인 Rose hill dr를 따라 서행하며 지역이름을 찾아 나갔다. 박 시인의 묘는 금세 찾을 수

있었다. 로즈힐 드라이브를 따라 올라가다가 중간쯤에서 한 번만 우회전을 하면 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묘지에 올 때마다 매번 잘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장례식 때 눈짐작으로 보아둔 것이 있으므로 가

기만 하면 찾을 수 있겠지 하고 낙관하지만, 실지로 묘지공원에 들어와 보면 생각처럼 쉽게 찾아지지 않는 것이

묘소 찾기 이다.

성묘를 갔다가 오랜 시간을 헤매고도 찾지를 못해 할 수없이 아래쪽으로 내려와 묘지 전체를 향해서 인사를 하고

돌아온 적이 두어 번이나 된다. 그래서 작심하고 묘지 지도를 만든 것이다. 특히 로즈힐과 헐리웃포리스트론에는

다수의 문단 선배들이 묻혀 있어서 지도 없이는 구별해서 찾아내기가 정말 어렵다.

혼은 이미 떠나고, 흙이 될 육신만 누워 있는 묘지에 찾아온들 그것이 망자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다만 살아

있는 사람이 자기 위로를 구하려는 행위에 불과한 일이겠다. 허지만 그것이 체온을 가진 사람의 도리려니 하는 생

각으로 산소를 찾는 것이다.

묘지 지도를 가지고도 박 총장의 묘소를 찾는데 잠시 시간을 허비했다. 그러나 큰 어려움 없이 세 분의 묘소를 차

례로 돌아 내려왔다. 로즈힐 드라이브를 따라 천천히 하산하며 아득히 펼쳐진 도시를 그윽하게 내려다본다. 저 번

잡한 삶의 터를 잠시나마 떠나 있다는 대견함이 또 하나의 위로가 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