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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무투아 키이오

2014.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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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투아 키이오 / 이 용우

 

 컴패션이 우리 교회에 와서 이벤트를 한다는 광고가 나올 때부터 나는 은근한 부담을 느꼈다. 내 성격상 눈앞에

닥치면 분명히 후원을 약정하고야 말텐데 아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이었다. 한 번 시작하면 적어도 10년 이상

꾸준히 후원해야 하는데 그럴 자신 있느냐고 다그칠지 모른다. 더구나 우리는 지금 후원하고 있는 아이가 하나 있

지 않느냐, 그 아이나 잘 보살피자, 그렇게 말하기 십상이다.

 그런 부담을 느끼면서도 막상 컴패션 대표목사님의 눈물어린 설교와 차 인표 씨의 아프리카현지 영상과 간증을

듣고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후원약정서에 싸인을 했다.

예배 후에 로비로 나와 그곳에 전시된 사진을 보니 후원할 아이를 직접 선택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후원서

작성을 도와주는 컴패션 직원에게 이미 약정서를 써냈는데 지금이라도 사진에 있는 아이를 선택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물론이지요, 원하는 아이의 사진을 떼어 오세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네다섯 개의 입상 전시대 양면에 빼곡하게 붙어 있는 아이들의 사진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이미 선택을 받

아 사진을 떼어간 빈자리가 적잖았지만 그러나 아직도 많은 수의 아이들이 자신의 후원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지금 후원하고 있는 아이가 아시안 여자아이니까 이번에는 아프리칸 보이로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런 생각으로 돌아보다가 내 눈길을 끄는 한 아이를 발견했다. 그 아프리칸 보이는 붉은 황토길 위에 까만 바지와

보라색셔츠를 입고 차렷 자세로 서 있었다. 국적은 케냐, 나이는 다섯 살이었다. 나는 사진을 떼어내려다 다시 제

자리에 꽂았다. 후환을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마침맞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주방봉사를 하고 있는 아내에게로 가서 잠시만 나오라고 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아내에게 ‘당신의 도움

이 필요해, 아주 중요한 일이야.’ 했더니 더는 묻지 않고 따라 나왔다. 식당을 나서며, 예배 중에 후원약정서에 싸

인을 했는데 전시된 사진을 보고 선택하려니 당신이 함께 봐줘야겠다고 했더니 씨익 웃으며, “내가 보낸 카톡 안

봤구나?” 했다. 나는 예배 중에는 휴대폰을 꺼놓는다. 나는 얼른 스마트폰을 켜서 카톡을 눌러보았다. -여보, 컴패

션에서 아이 하나 후원하세요.- 아내가 보낸 문자가 틀림없었다.

“당신이 이젠 아주 내 속을 훤히 꿰뚫고 있고만.”

 “그런데 더 이상은 않되, 우리 형편에 둘 이상은 정말 무리야. 알았지?” 아내도 내가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으로 마음의 작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알았어, 부자가 되기 전에는 안할게.”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곧바로 미리 보아둔 자리로 아내를 이끌었다. 셔츠

앞단추를 목까지 꼭꼭 잠그고 긴장해서 서있는 아프리칸 보이를 보더니 아내는 환하게 웃으며 ‘어머, 귀엽네.’ 했

다. 아내에게 아이 이름을 한 번 읽어보라고 했다.

 “무~투아…. 키이~오…. 무투아 키이오!” 처음에는 떠듬거리더니 두 번째는 단번에 읽었다. 그래도 아내는 아이의

이름이 입에 잘 안 붙는지 무투아, 무투아 하며 두어 번 더 불렀다.

“Mutua Kiio, you’re my son from now!” 나는 선언하듯 그렇게 말하며 아이의 사진을 전시대에서 떼어냈다. 우리는

뿌듯한 마음으로 활짝 웃으며 무투아의 사진을 컴패션 도우미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도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사

진을 받아 약정서에 인적사항을 옮겨 적었다.

 매 달 후원금이 38달러, 그리고 1년에 한 번 아이의 생일과 크리스마스 선물로 각각 15달러씩 지불한다는 약정서

에 싸인을 했다. 내가 선물비용을 25달러짜리 칸에 표시했더니 도우미녀가 처음부터 비싼 선물을 하기보다는 아

이의 성장에 따라 조금씩 올려주는 것이 좋다는 아이디어를 주어서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했다.

 내 인적사항과 크레딧카드 번호를 적어넣는 것으로 모든 서류작성이 끝나자 도우미녀는 무투아의 사진을 돌려주

며, 한 생명에게 가장 큰 선물을 주었다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 사진속의 아이는 여전히 긴장한 표정으로 차렷 자

세를 취하고 있다. 그 작은 얼굴이 긴장의 어두움을 떨쳐버리고 천진하고 맑은 얼굴로 활짝 피어날 것을 기대해본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