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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건너 오두막-세탁소 풍경

201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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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소 풍경/홍순복

 

 친구 S는 한국방문을 하며 자기세탁소를 8일간 맡아 달라 했다. 첫 출근하던 날 날씨가 90도를 넘었다. 더운 것은 참을

수 있다고 자신하며 들어선 세탁소엔 스팀냄새와 화기로 금세 얼굴이 후끈거렸다. 다리미가 있는 근처는 더더욱 그랬다.

 친구가 단단히 일러준 대로 물빨래 셔츠는 일일이 단추를 풀었다. 그래야 다림질 할 때 쉽다고 했다. 드라이 할 것은 요일

별 다른 색으로 만든 번호티켓을 핀으로 꼽으라고 했다. 왼쪽 소매부분에 꼽아야 티켓을 잘 볼 수 있다. 셔츠는 왼쪽 아랫

부분 안쪽에 손님의 성을 쓰게 된다.

 어떤 셔츠는 칼라마다 작은 단추가 있어 그것을 일일이 풀려니까 손가락이 아파왔다. 손님이 맡길 옷을 들고 오면 물빨래

와 드라이를 잘 구별해야 한다. 가격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구별을 잘못하면 헛장사를 한다는 것이다. 블라우스도 면과

실크가 다르다. 레이스가 많고 복잡한 것은 일일이 손으로 다리므로  시간이 더 걸려 웃돈을 받는다. 그러나 블라우스와

드레스 이불보 같은 것은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손님 중엔 셔츠를 빨래바구니 채 들고 오기도 하고 옷걸이를 다시 쓰라며 셔츠가 걸린 상태로 가져와 일감을 더 주고 가

기도 했다.

 출근길에 많은 손님이 왔다간 후 친구남편은 테이블에 아무것도 놓으면 안 된다며 옷걸이 더미를 치우며 말했다. 아내가

일할 땐 자기도움 없이도 잘 돌아갔다며 궁시렁거렸다. 나도 이민 초에 세탁소에서 잠시 일해 봐서 나름 열심히 하는데 그

에겐 흡족치 않은가 보다. 매일 하던 사람과 잠시 돕는 사람이 어찌 같겠는가. 허지만 그는 자꾸 아내이야기를 했다. 잠시

도 쉴 틈 없는 첫날은 점심도 서서 김밥 몇 조각을 먹었다. 얼마 전에 그만둔 회사가 세탁소 일보다는 신선놀음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무거운 옷들을 옮기다 보니 손에 푸른 심줄이 섰다. 친구의 손가락관절에 문제가 있는 것을 보며 일의 양이 많다는 생각

이 들었다.

Rack에 걸어둔 옷이 떨어졌다고 옷을 걸때엔 옷걸이를 꽉꽉 구부리라고 했다. 손이 얼얼해졌다. 다리다가 맨 앞단추가 무

거운 기계에 눌려 깨지기 일 수 이었다. 친구는 단추를 달 때엔 실을 2겹으로 끼면 4겹이 되어 두어 번 하면 시간을 절약한

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안경을 써도 침침해서 2 겹을 한다는 건 엄두도 나지 않았다. 실 한 올을 불빛에 비쳐야 겨우 바늘

귀를 꿸 수 있는데 말이다.

 다림질 하는 사람이 첫 단추를 채우면 나는 두 번째 그리고 하나 넘어 단추를 채워야 했다. 그래야 포장할 때 구김이 가지

않았다. 최고로 많이 싸는 것은 한 비닐 백에 셔츠 4개이다. 셔츠를 쌀 땐 밝은 색과 짧은 소매 옷을 앞으로 예쁘게 만들라

고 했다. 앞의 셔츠 팔뚝주름을 잘 접어 앞으로 다소곳이 엇갈리어 놓고 그 다음 것을 또 덧입힌다. 그러면 꼭 다소곳이 양

손을 앞으로 모은 것 같아 가지런하게 보인다. 그것을 손님들이 좋아한다고 했다.

셔츠하나에 그렇게 공이 드는데 아직도 30년 전 가격 1불을 받는 가게도 있으니 바보짓 같아 보인다. 드라이 옷을 겨냥해

서 물빨래를 싸게 한다고 하지만 타산이 맞지 않을 것 같다. 어떤 셔츠는 목에 때가 너무 앉아 솔로 박박 문질러야 겨우 깨

끗해진다.

 친구남편은 두꺼운 마스크를 쓰고 얼룩이 있는 것은 스팟기로 제거한다. 더운 날에 그의 마스크가 더 숨 막히게 했다.

친구남편을 바라보며 참 성실한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13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6시부터 저녁7시 까지 서서 일하

고 있다. 그래서 그는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 거다.

 히스페닉여자가 와이셔츠를 다리고 한 남자는 바지를 또 한 사람은 그 이외의 모든 옷을 다렸다. 바지를 다리는 남자는

바지를 주름잡아 다림판에 쫙 펴고 위의 뚜껑을 닫으면 스팀이 나와 바지가 눌려진다. 그의 발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모른

다. 단조로운 멕시코음악은 하루 종일 쿵따라 쿵쿵댄다.

손님들은 옷이 조금만 터져도 들고 와 박아달라고 했다. 2인치 정도를 박음질해도 6불을 받는다. 우리 같으면 손으로라도

꿰맬 수 가 있는데 말이다.

 다리가 아파왔다. 잠시도 쉴 겨를이 없었다. 뱃속에선 점심시간을 알린지도 오래됐다. 시계가 2시를 가리켰다. 스낵이라

도 먹을라치면 손님이 두 명씩 같이 왔다. 모두가 낯선 나를 보며 새 주인인가, S는 어디 갔냐고 물었다. 친구는 한국방문

중이라고 똑같은 대답을 레코드처럼 해야 했다.

 옷 배달을 갔던 친구남편은 쥬스컵을 들고 와 내게 내밀었다. 위에는 바나나와 그라놀라가와 아몬드가 있고 밑에는 아사

히 베리를 얼음과 갈은 거였다. 꼭 팥빙수처럼 보였다. 덥고 지친 내게 그 맛은 기막혔다. 조금 전만 해도 일을 못한다고

타박해서 더 지치게 했는데 그 얼음과자 한 그릇에 고마움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