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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던 날 그리고 어머니’ _ 임용성 담당목사

20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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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성 담당목사 칼럼]

‘비 오던 날 그리고 어머니’ / 온누리신문

나는 비를 좋아한다. 비는 투명한 소리를 낸다. 그리고 비는 생명이다. 새벽 미명에 빗속을 헤치고 아무도 없는 도로를 달릴 때는 나는 이미 동화의 주인공이 되어 있다.

 

나는 시골에서 태어났는데 어릴 적엔 참 비가 많이 왔던 걸로 기억한다. 초등학교 시절 비만 오면 학교에서 나눠준 체육복을 입고 그 비가 그칠 때까지 무조건 걸었다.

 

비가 오면 제일 먼저 찾아가는 곳이 있었는데 우리 학교였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는 5분정도의 거리였는데 비를 맞으면서 지나가는 연인들에게 물창을 튀기며 도망가기도 하고 일부러 물이 고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서 신발을 물에 흠뻑 젖게 하였다. 그리고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로 가 그곳에 있는 양어장 연못에 사는 잉어랑 이야기도 하고 유관순 누나,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폼도 재며 이야기도 했다. 운동장 어귀에 있는 플라타너스 나뭇잎을 주어다가 물 고인 곳에 가서 띄워보기도 했다.

 

그때 당시 우리 초등학교에는 열 가지 비밀이 있었다. 그 시절 어디 초등학교가 안 그랬겠는가?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열 가지 비밀을 알면 죽는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내가 아는 6학년 누나가 이 열 가지 비밀을 알고 죽는 일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이 열 가지 비밀을 알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했다. 예를 들면, 유관순 누나랑 이순신 장군이랑 밤만 되면 싸워서 둘이 그렇게 동상에 피를 흘리는 거라고 하는 것. 소풍가는 날만 되면 비가 자주 왔었는데 그 이유가 비 오는 날 화장실에서 한 아이가 빠져 죽었는데 그 아이의 한이 남아 있어서 비만 오면 그렇게 비가 온다는 이야기. 그리고 공보관이라는 체육관이 있었는데 비만 오면 거기서 귀신들이 떠들고 논다고 그곳에 가면 절대로 안 된다고 하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들이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일이지만 그때는 사느냐? 죽느냐? 의 문제였다.

 

 

이렇게 반나절 이상을 보낸 후에 걱정스런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면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가 화난 얼굴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화를 내시면서 부엌으로 끌고 갔다. 우리 집은 가난했기 때문에 부엌에서 목욕을 했다. 그때는 목욕통을 다라이통이라고 했다.

 

그 통에 나를 집어넣고 그 큰 손으로 엉덩이를 철퍽철퍽 때려가면서 “감기 들면 어떡 할라고 비만 오면 나가냐? 이 녀석아!” 하면서 씻어 주셨다.

 

그리고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속옷을 새것으로 입혀 주셨다. 혼이 난 내가 누워있으면 어머니는 가만히 와서 무릎으로 베개를 만들어주시고는 나의 가슴을 쓸어주시면서 감미로운 목소리로 자장가를 불러주셨다. 우리 어머니는 정말 노래를 잘 불렀다. 나는 엄마의 품속에서 스르르 꿈나라로 미끌어져 들어갔다. 그 순간이 나에게는 천국이었다. 그 맛 때문에 더 비를 좋아하게 된 걸까?

 

20대 후반에 어머니가 아프셨다. 나는 젊고 강해졌고 어머니는 암으로 약하게 늙어가셨다. 나는 젊은 어머니를 통해서 고난가운데서도 붙잡아야 할 하나님을 알았고 늙은 어머니를 통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를 알았다. 암에 걸린 어머니를 6개월가량 간호를 할 때 자주 어머니의 손을 만졌다. 어린 시절 내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우왁스런 손길로 내 등을 씻어주던 그 손은 이제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환갑을 못 치르고 하나님 나라로 가셨고 그리고 비는 계속 왔다. 어머니가 불렀던 찬송의 소리로 비는 온다.

 

곧 장마가 올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엄마로 내 가슴에 찾아올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 이름을 다시 불러본다.

 

“엄마! 나 목사 됐어요. 엄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됐어요. 천국에서 봐요. 미안하고 사랑해요.!”